Page 91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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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가르침은 결국 노예제를 없애는 거대한 인권 운동을 잉태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실제로 아주 미미한 교회의 힘으로 노예제를 없애기는커녕, 많
            은 노예 신자들을 개별적으로 해방시킬 수도 없는 상황에서(고전 1:26 참조), 바울은 그들
            에게 세상 제도로는 노예이지만 주 안에서 자유인이 되었음을 감사하며 자신의 노예의 처
            지를 주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장으로 새롭게 이해하며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해 가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13~17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신 사건을 하나님의 ‘은혜’와 ‘부름’이라는 두 단어로 설명합니다. 바울
            이 이 두 단어들을 자신에게 적용할 때 대개 그러듯이, 그곳에서도 바울은 그 단어들로 자
            신의 구원은 전제하고 주로 자신의 사도직의 사명을 뜻하도록 사용합니다. 이것은 15~16
            절에서 바울이 자신에게 구원의 사건이 된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과 부르심을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복음으로 선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하는
            데서 잘 드러납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철저한 신본주의적 사고방식을 엿봅니다. 우리는 보통 우리의 회심
            과 구원의 체험을 경건주의               ‐ 복음주의적 전통의 영향으로 인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합니
            다. “내가 복음을 듣고 믿기로 작정하여 구원을 받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나는 구
            원받았다. 그러므로 I am OK!”라는 자만에 빠지고, 결국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곧 나를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분쯤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이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자적 행위였음에 초점을 맞추어, 즉 신본주의
            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목적, 구원을 얻도록 부르신
            주권자적 목적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목적을 성취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한
            다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구원으로의 부름에서 우리는 그의
            사명으로의 부름을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기 우상화가 죄의 본질로서 하나님과의 관
            계를 뒤틀리게 하고, 반면에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그의 주권에 순종하는 것이 칭
            의의 근본 의미, 곧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의 회복 아닙니까?
            바울이 자신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하나님의 은혜와 소명 체험에 대해 ‘자신으로 하여금 이
            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라고 할 때, 그는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복
            음으로 구원하시고자 하는 구원의 계획에 바울 자신을 일꾼으로 쓰시고자 한 것으로 깨달
            았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자적 경륜(오이코노미아, oikonomia) 가운데
            이방인들의 구원이 우선하고, 바울의 구원은 그것을 위한 도구 마련의 의미가 있었던 것입
            니다(엡 3:7~12; 골 1:25~29). 따라서 교회의 핍박자로, 하나님의 원수(롬 5:10)로 날뛰던
            바울은 하나님의 이방인들에 대한 구원의 계획 덕분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이
            방인들 덕분에 구원을 받았다는 뜻도 내포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구원의 빚을 진 셈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1:14에 있는 그의 놀라운 선언의 진정한 의미입
            니다. “헬라인들에게 그리고 야만인들에게, 지혜 있는 자들에게 그리고 미련한 자들에게
            내가 빚진 자(오페일레테스, opheiletes)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 선포하는 것을, 즉 그들이 구원을 얻도록 그의 사도직
            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보았습니다. “숙명(아낭케, anangke)이 내게
            지워졌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고전 9:16).
            바울은 이방인들의 사도로서(롬 11:13; 15:15~16) 그들에게 복음 선포하는 것이 그에게 주
            어진 숙명이며, 그 숙명을 거역하면 자신에게 멸망의 재앙이 내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은 그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에게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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