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칭의와 성화-김세윤
P. 93

받은 개별화된 소명을 감당하도록 다양한 은사로 나타납니다(롬 12:3~8; 고전 12:4~11; 엡
            4:4~15).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소명에 담긴 사명
            으로의 소명을 그 은혜/은사로 잘 감당하여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구원의 통치)의 실현에
            이바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소명을 받은 사람들로서 우리가 종사하는 각종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인식하고, 그곳에서 이웃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전달자 노릇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 또는 주권자적 경륜의 한 부분을
            이루어 가야 한다.” 이것이 루터가 바울의 소명에 대한 가르침을 발견하여 처음 설명하고,
            칼빈이 발전시킨 개신교의 소명 사상입니다. 우리가 종사하는 일, 우리의 직업(vocatio;
            calling; Beruf)을 하나님의 소명(vocatio; Call; Ruf)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 직업 활동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에게 덕을 끼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중
            세에는 성직자들만 하나님의 소명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일반 직업은 단순히 생계 수단으
            로만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바울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는다는 것과 모든 직업이 다 하나님의 소명의 장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리하여 그들은 모든 직업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각자의 직업을 이웃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전달자 노릇 하는 장으로, 곧 이웃에게 제사장 노릇 하는 장으로 보도록 가르쳤습
            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개신교도들은 소명감을 가지고 자신들의 노동을 거룩하게 여기며
            자신들의 직업 활동에 대해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로 성실히 이행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
            연히 이익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순종의 삶에 하나님이 내려주
            신 복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직업 활동을 통해 얻는 이익이 신학적으로 정당화
            되자, 창의적이고 부지런한 노동으로 그것을 더 확대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정신이 싹트
            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당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루터와 칼빈의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가르침의 사회                                ‐경제적 의미를 이렇게 해
            석하면서, 그들이 재발견한 바울의 칭의론이 종교적 혁명을 가져왔다면, 그들이 재발견한
            바울의 소명 사상은 북서유럽에서 사회                      ‐ 경제적 혁명을 가져왔다고 주장하고, 후자의 문명
            사적 의미는 전자의 것보다 결코 작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서 바울의 소명 사상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두 가지 이
            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의 임박한 종말론에 근거한 ‘보수적’ 직업윤리입니다. 바울은
            당시 노예가 해방될 기회가 더러 있었으므로,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을 이용하라고 예
            외적인 가르침을 삽입하기는 하지만, 고린도전서 7:17~24에서의 그의 권면의 기조는 하나
            님의 구원으로의 부름이 임했을 때 각자가 있었던 처지를 하나님의 사명으로의 부름으로,
            그러니까 그 처지를 소명지로 보고, 그것을 변경하려 애쓰지 말고 그 안에서 주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기준으로 말하면 바울이 일면
            굉장히 보수적인 윤리를 가르친 셈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가르침에는 그의 임박한 종말론
            이 전제된 것입니다. 그가 고린도전서 7장에 그것을 두 번이나 표현하지 않습니까? “(종말
            의 구원의) 때가 단축되었다”(29절),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져간다”(31절), “그러니 종말의
            환난이 임박한 상황에서 신분이나 처지를 바꾸어 어려움을 더할 필요가 없다”(26절). 바울
            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주의 재림이 임박하여 어쩌면 자신이 살아서 주를 맞으리라고 생
            각했기 때문입니다(고전 15:51~52; 살전 4:13~18; 그러나 고후 5:1~10; 빌 1:21~24도 참
            조). 그러나 바울의 시대 이후 거의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그와 같은 임박한 종말론
            에 근거하여 우리의 직업 활동을 볼 수는 없습니다.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