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월간사진 2017년 1월호 Monthly Photography Ja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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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필드에서 나 안 만날 거야?

                  사진학과에 들어가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교수로부터, 선배로부터, 그리고 어떤 때
                  는 나이 많은 동기로부터. “너 필드에서 나 안 만날 거야?”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부터 이들과의 관계는 굉장히 껄끄러워진다. 불합리함을 느끼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사
                  진계’라는 곳이 워낙 좁다 보니 사진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관계를 유지해
                  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흔히 말하는 보통의 삶, 즉 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case 1
                  힘들다. 전공부터가 말썽이다.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시대에 사진 전공자를 위한 취직자                      좀 과장해서 말하면, 일당백 노예라고 해야 할까.
                  리가 다양할 리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기업 공채 때 사진 전공이 서류전형에서                     밤늦게까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것을 돕는
                  걸러지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다. 아주 드물게나마 기업 홍보팀에서 사진 전공자를 고용                        건 기본, 남아서 후보정까지 하는 것이 평범한 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계약직에 취직하더라도 계약 연장의 꿈이 이                      상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 실장님의 강의를 듣는
                  뤄지는 것은 실제로 흔치 않다. 냉정하게 말해 사진 전공자의 업무능력과 경험이 타전공                       학생들의 시험 점수도 매겨야 했다. 틈틈이 시시
                  자에 비해 조금은 부족하다는 선입견 탓이다.                                              콜콜한 잔심부름도 해야 했다. 시간 맞춰서 실장
                  몇 개 남지 않은 선택지 중에서 결국 가장 많은 선택을 받는 건 ‘상업 스튜디오 입사’다.                    님의 아이를 데리러 가는 건 예삿일이었다. 숙제
                                                                                        도 봐줘야 했고, 가끔씩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취업률 달성을 위해 학과로부터 스튜디오 어시스턴트 취직을 ‘강요’ 받는 경우도 종종 있
                                                                                        현대판 집사가 있다면 바로 내가 아닐까 하는 자
                  다. 여기에 꼭 덧붙여지는 말이 있다. 바로 “처음에는 다 힘들게 일한다. 젊었을 때는 무엇
                                                                                        괴감이 느껴졌다.
                  보다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 급여는 그 다음이다.”는 말이다. 학교에서부터 열정페이
                  가 공공연히 자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난센스인 건 이러한 행태가 좁고 험한 사진계에서
                  전공자들이 잘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도제식 교육’으로 포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case 2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스튜디오 실장은 한국 스타일과 미국 스타일을
                                                                                        절묘하게 오가며 괴롭혔다. 그는 평소 “나는 미국
                  사진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정석 코스 중 하나는, 필드에서 이름 있는 사진가를 모시고                      에서 공부해 오픈마인드니 힘든 점이 있으면 자
                  (!)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일도 배우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차근                  유롭게 말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간혹 부당한
                  차근 올라갈 수 있어서다. 그래야만 추후에 사진가로부터 일을 받는다거나 작가 추천을                        업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면, 바로 거친 욕설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가의 평가와 추천이 업계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다. 권력 관                      돌아왔다. 심지어 “여기는 한국이니까 내가 짜증
                  계가 작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을 내더라도 너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물 중 하나인 A씨가 있다. 필드에서 A씨 일화는 명성이 자자하                      했다. 식사 메뉴를 정할 때 받은 굴욕은 잊을 수가
                  다. 어시스턴트가 장비를 고장 냈다는 이유로, 식대를 과하게 지출했다는 이유로 사람들                       없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메뉴를 선택했더니,
                                                                                        그는 “네가 원하는 걸 정확히 모르니까 넌 사진도
                  이 보는 앞에서 평소 월급보다 깎은 금액을, 그것도 모두 동전으로 지급했다는 이야기는
                                                                                        못 찍는 거야.”라며 면박을 주었다. 그 이후로는
                  어시스턴트 사이에선 전설로 통한다. 다른 스튜디오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업무량이 넘치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는 건 흔하디흔한 일이라 더 이상 특별한 것도 아니다. 육체적인 피로보다 정신적인 스트
                  레스가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어시스턴트들도 있다. 어시스턴트 B씨는
                  “잦은 야근과 적은 임금에 대한 스트레스는 참을 만한데, 인격 모독은 도저히 참기가 어
                  렵다.”고 말한다.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 앞에서 “왜 이렇게 살이 쪘냐?”, “ 왜 화장을 안
                  하냐? 그러니까 남자친구가 없는 거다.”라는 놀림을 받았을 땐 굉장히 수치스러웠다고
                  한다. 촬영 현장에서 울 수 없어 몰래 화장실에 가 울었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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