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월간사진 2018년 3월호 Monthly Photography Ma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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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97)스페셜4-다시아날로그(6p)-최종수정OK_월간사진  2018-02-22  오후 10:14  페이지 094
































                시간과 빛과 영혼을 머금은 종이

                <종이의 신 이야기>(책읽는수요일 펴냄)는 ‘클릭 한
                번으로 사라지지 않는, 덧쓰기도 할 수 없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느려터진 전달도구’인 종이가 주인공
                인 책이다. 저자인 오다이라 가즈에는 10년 전 취재
                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 종이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이를 한데 엮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일본 최고의 종
                이 장인들과 현재 가장 핫한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특별한 기억이 담긴 종이를 소개하고 있다.
                펭귄북스의 타이포그래피와 디자인을 혁명한 얀 치
                홀트(Jan Tschichold) 일화부터 파리 빵집의 바게트
                포장지, 스탬프가 찍힌 여권, 피카소가 사랑한 종이,
                폴라로이드 사진과 붓펜 같은 평범해서 특별한 이야
                기들에선 운김이 느껴진다. <종이의 신 이야기>의 ‘신
                의 한 수’는 인쇄 방식이다. 종이와의 인연을 담은 책
                인 만큼 앨범지, 미색백상지, 만화용지 등을 섞어서
                인쇄했다. 그중 백미는 포장지를 크라프트지에 인쇄
                해 소개하는 부분. 종이에서 느껴지는 질감 덕분에 선
                물을 포장할 때의 설렘과 감사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
                하다. 이 책을 읽는다면, 저자의 말마따나 아무렇지도
                않은 종잇조각에 담뿍 배어있는 감정과 추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 귀환’의 시대, 가히 종이 애
                호가들을 위한 최고의 책이라 하고 싶다.
                만약, 연필과 종이 같은 문구류를 구입하고 싶은데 핫              앨범 커버의 연금술사, 힙노시스
                플레이스를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면 <마음을 사로잡
                은 디자인 문구>(스타일북스 펴냄)를 읽어보길 바란               핑크 플로이드와 레드 제플린, 10cc, AC/DC 같은   품도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촬영은 됐지만 미처 음
                다. 올곧은 만듦새로 디자인 역사를 열고 현재까지 이              1970~80년대 록음악과 사랑에 빠졌었던, 혹은 여전    반에는 실리지 못했던 미공개 사진들도 있다. 또한,
                끌어온 브랜드와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못한 브랜드                히 빠져있는 음악 마니아(라 쓰고 아재라 읽는다)에      작품 탄생에 얽힌 비화, 뮤지션과 음악 산업 사이의
                19곳의 이야기를 감성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게는 끝내주는 책이 될 것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아      관계, 음악 관계자들의 내부 갈등 같은 흥미로운 이야
                                                           니, 이미 그렇게 된 듯하다. 오로지 음반 커버만을 집    기도 담겨있다. 서문을 쓴 피터 가브리엘(Peter
                                                           대성한 책이 출간 한 달 만에 2쇄를 찍었기 때문이다.    Gabriel)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새 앨범을 개봉하
                                                           이는 바로 오브리 파월(Aubrey Powell)의 <바이닐.  는 건 종교적 경험이었고, 바늘이 LP의 소리골에 내
                                                           앨범. 커버. 아트>(그책 펴냄) 이야기다. 오브리 파월   려앉으려던 순간, 막 들어가려던 마법의 세계를 그려
                                                           이 누구던가. 전설적인 앨범 커버를 수없이도 많이 남     내기 위해서 앨범 커버는 반드시 필요했다.”라고 말
                                                           긴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Hypnosis)’의 일원이 아니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본다면, 이러한 경험을
                                                           던가. 책에는 오브리 파월이 1967년부터 1984년까    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만약, 무의식
                                                           지 그의 동료들과 작업한 373장의 음반 디자인 커버     적으로 결제 버튼에 손을 옮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가 수록되어 있다. 이미 알고 있던 작품도 있을 테고,    발견하게 된다면, 부디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길 바란
                                                           그때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책을 통해 ‘어? 이 커버도     다. 무분별한 LP 레코드판 탕진잼의 보상은 잔소리가
                                                           힙노시스 디자인이었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작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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