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월간사진 2018년 3월호 Monthly Photography Ma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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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기의 이론과 실제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저글러스>에는 비서 좌 이 상세히 적혀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필 깎기
윤이가 남치원 상무를 위해 연필을 깎는 장면이 전 워밍업 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저자는 샤프 마
나온다. 당시 드라마 장면 속 뾰족한 연필심을 보 니아가 들으면 아주 큰 일 날, “샤프펜슬은 순 엉
며 묘한 희열을 느꼈었는데, 만약 이 책을 조금만 터리(Bullshit)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연
일찍 접했더라면 좌윤이보다 연필을 더 잘 깎았 필 깎기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인다. 연필이라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든다. 데이비드 는 아날로그 문화의 주체를 재조명하는 것과 동
리스(David Rees)의 <연필 깎기의 정석>(프로파 시에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소확행의 가치
간다 펴냄)은 속된 말로 골 때리는 책이다. 주머 를 환기하는 듯하다. 데이비드 리스는 우리나라
니칼을 사용한 방법을 비롯해 외날 휴대용 연필 매체에도 몇 번 등장했는데, 그의 연필 깎는 기술
깎이, 이중날 회전식 연필깎이 같은 도구를 이용 이 궁금하다면 <SBS 스페셜 - 연필, 세상을 다시
해 보다 더 완벽하게 연필을 깎을 수 있는 방법 등 쓰다> 다시보기를 추천하는 바다.
다시 아날로그에 열광하는 이유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면 인터랙티브하고 에
로틱한 소프트웨어로 흥미진진한 일을 할 수 있지. …
그래도 난 자위는 손으로 해.”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
(The Big Lebowski)>의 도발적인 대사로 시작하는
데이비드 색스(David Sax)의 <아날로그의 반격>(어
크로스 펴냄)이다. 디지털 라이프가 영구적인 현실이
된 지금이지만, 아날로그 문화가 다시 사랑받는 아이
러니한 상황을 설명하기에 저 영화 대사만큼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책이 어떤 내용을
이야기할지 짐작 가능할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몰스
킨 노트 열풍부터 아마존 오프라인 서점의 등장까지,
저자는 문화, 심리, 교육, 경제 전반을 뒤흔든 아날로
그 유행의 탄생을 밀도 있게 분석했다. 레코드판, 종
이, 필름, 보드게임, 인쇄물 같은 아날로그 문화가 인
기를 끌고 있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 리포팅하는 형식
은 책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다만 책 내용이 사회·
문화적 분석보다는 포스트디지털시대 경제에 더 초
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경제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읽다가 이따금 하품을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