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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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 꽂히면 또 문 안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가 쓰고 버린 붓이 태산을                                   속에서 한 세계가 끝날 때까지 한참을 놀다 나온다. 그

                   이루어도 족하지 않다                                       렇게 오랜 세월 붓 속에 은일(隱逸)하여 살다보니, 선

                                                                     생은 우주 만물과도 잘 어울리고, 마음과 기와 몸도 있
                                                                     는 듯 없는 듯 자취 없이 오랫동안 존재하게 된 듯하
                     명필은 붓 타박도 않는다는데, 선생은 언제나 새 붓
                                                                     다. 쓰고 버린 붓이 태산을 이루어도 아직도 족하지 않
                   만 쥐어주면 좋았다. 그렇게 써온 붓이 600자루다. 이
                                                                     은 채로 말이다.
                   사를 몇 번 하는 도중에 책도 없어지고, 생필품도 줄었
                   지만 붓만은 그대로다. 가끔씩 600자루나 되는 붓을
                                                                      “무아(無我) 위는 진아(眞我)의 경지가 있는데, 나는
                   일일이 빨아 보존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어도, 스스
                                                                     그 중간에는 이른 것 같아.”
                   로 살아온 역사라 버릴 수 없다.
                     한마디로 선생은 자신이 들고 살았던 600자루나 되
                                                                      다시 말하지만 소남 선생에게는, 서예도 민화도 예
                   는 붓이기도 하고, 그 모든 붓들을 통합한 단 한 자루
                                                                     술을 넘어 도(道)다. 그래서 선생의 자취에는 권태가
                   의 붓이기도 하다. 하나를 시작하면 어디에 가든 그 붓
                                                                     없다.
                   은 그 하나만 머릿속에 둔다.
                     단순해서 문 밖을 나가면 안의 일을 다 잊어버리고,











































          노안도(蘆雁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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