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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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역터
조선시대에 지금의 행안면 역리(송정·서옥마을)에 있
었던 부흥역(扶興驛)의 터이다. 역참제(驛站制)는 국가의
중요한 문서 전송, 관리나 사신의 행차, 운수를 뒷받침하
기 위해 설치된 조직적인 교통·통신체계로 부흥역은 삼
례역도(參禮驛道)에 속했다.
당시의 부흥역 기구구성은 역장 1인, 역리 7인, 노(奴) 고성산 신석정 시인 부부 묘역
72인, 비(婢) 30인이었으며, 역마 10필, 역전답(驛田畓)
34석 11두락지 등으로 병조에 속한 기관이었다. 역전답
의 경작으로 역원의 운영비를 충당케 한 것이다.
신원재
신원재(慎遠齋)는 고성산 아래 송정마을에 있는 영월
신씨(寧越辛氏) 재실로 동학혁명 때 잠시 동학군들의 도 영월신씨 재실 신원재
소(都所)가 이곳에 설치되었었다.
미륵골
미륵골은 송정마을 서쪽의 고성산 골짜기로 돌미륵(용
화사미륵불입상)이 있어서 생성된 땅이름이다. 미륵이
땅위로 솟아올랐다는 전설이 있다.
송정마을 미륵골 용화사
용화사미륵불입상
미륵골 용화사(龍華寺) 경내에 있는 용화사미륵불입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1호)은 높이 4.5m의 석
불입상인데, 땅속에 묻힌 부분까지 포함하면 규모가 훨씬 더 큰 불상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석불의 앞면은 섬
세하게 조각하였으나 뒷면은 조각을 생략하고 거칠게 마감하였는데, 이로 볼 때 원래 건물 안에 모시던 불
상이라 여겨진다.
머리에는 조선 말기에 새로 만든 원형(圓形)의 보개형(寶蓋形) 관(冠)이 씌워져 있고, 코는 최근에 시멘트
로 보수한 흔적이 있다. 불상은 전체적으로 머리 부분을 크게 하고 하체를 빈약하게 처리하였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귀가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절에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백제 의자왕 2년에 묘련(妙蓮)선사가 바위가 솟아나는 것을 보고 이 절(‘미
륵사’라고도 하였음)을 창건하고 미륵석불입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석불의 양식으로 보아 충청남
도 논산의 은진미륵에서 비롯되는 거불들과 상통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조성 시기는 거불들의 조성이
활발하였던 고려 말을 전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절은 고려시대에는 미륵도량으로 크게 번창하였다고 하나 조선시대 들어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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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4_행안면의 땅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