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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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가? 스스로 되물으며 2018년 10월 어느 날의 하루                   처형한테서 모과도 따고 양파모종도 가져가라고 전화
                   를 꺼내 본다.                                          가 왔다. 읍내에 나가 빵 몇 개를 사고 어머니 드릴 것
                                                                     도 사서 출발했다. 애들 머리만한 모과를 줍기도 하고

                     아침 5시 50분. 아직 밖은 어슴푸레 하지만 어제 난                  따기도 하여 여섯 부대나 담아 싣고 양파모종을 가지
                   타연습을 하느라 늦게 잠자리에 든 아내를 깨울까 살                      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 집에 들러 사간 걸 드리고 뒷
                   며시 일어나 거실로 나가 커튼을 걷는다. 자욱한 안개                     밭에서 단감을 따서 싣고 왔다.
                   에 68미터 고성산이 구름 속에서 마치 장가계 봉우리                      아침에 널어놓은 깻대가 거의 말라 대막대기로 두드

                   처럼 높아 보인다. 앞마당 꽃들은 이슬을 머금어 싱그                     리는데 멀리 석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던 일을 팽
                   럽고 안개가 배경이 되어 더욱 선명하다. 천상의 낙원                     개치고 자전거를 몰고 논둑을 달려 해를 좇아 나간다.
                   이 따로 없다. 아침 체조로 몸을 풀고 가볍게 씻은 후                    “해 잡았어요? 들어오면서 상추 여섯 잎, 고추 안 매운
                   어제 가곡모임에서 간식으로 준 송편을 먹고 차가워                       걸로 5개, 호박잎 6장 가지고 오세요.” 자전거를 몰고

                   진 날씨에 대비해 옷을 챙겨 입었다.                              돌아오는 나에게 아내는 늘상 요구사항을 늘어놓는
                     장닭은 내가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동네 닭들과 교                     다. 주문대로 바구니에 담아 마루에 올려놓고 신발을
                   신하느라 분주하다. 암탉은 벌써 한 마리가 둥지에 들                     벗으려는데 누군가 집주인을 찾는다. 오늘 병원에 모
                   어가 있다. 주인을 닮아서인가 달걀 낳는 시간이 점차                     셔다드렸던 어머니께서 아들이 낚시로 잡아온 가물치

                   빨라진다고 아내가 말하던데 오늘은 한 마리가 허둥                       며 붕어를 가져오셨다. 차비도 못 주고 고맙다고... 붕
                   대며 둥지를 서성인다. 오후에는 알 낳을 자리를 하나                     어를 손질하는데 웃음이 절로 난다. 이런 마을 분위기
                   더 만들어야겠다.                                         가 마냥 좋다.
                     들깨가 잘 마르도록 다시 널고, 떨어진 낙엽에 어지                     어제처럼 장화를 탈탈 털었다.

                   러워진 앞길을 비로 쓰는데 건너 집 아주머니가 병원
                   에 간다고 지나가기에 병원에 태워다 주려고 트럭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오면서 몇 가지 정한 결
                   움직였다. 정류장에도 동네분이 계셔 끝집 어머니랑                       심이 있다. 첫째는 이제까지 해 보지 않은 일 위주로
                   세 분을 모셔다 드렸다. 부안이 의료보험지출 1위라는                     생활하기, 둘째로 일이나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 것, 셋

                   데 아침부터 어르신들이 많이 보였다. 그만큼 건강관                      째로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좋은 구성원이 되는
                   리에 좋은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것,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다면 이렇게 평온한 삶을
                     처음 시작한 한국어교원 시험이라 준비를 잘 해야지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며 인터넷을 켜려다 내일 비 온다는 예보를 생각하                      무언가 봉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고 공부는 저녁으로 미루고 오전엔 먼저 밭일을 하기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내가 행안에 온 것은 운명이라
                   로 했다. 들깨 베어낸 자리에 양파를 심을 요량으로 거                    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마치 이제까지 쭉 살아온 것
                   름을 뿌리고 비 오기 전 고구마를 캐려고 서두르는데                      처럼 낯선 곳에서 이리 편히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을
                   이장님이 올해 수확한 햇쌀이라며 한 부대를 건네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운명이어도 좋고 운명

                   신다. 애써 가꾼 건데... 감사한 마음과 함께 아직 엄두                  이 아니라도 좋다. 설혹 운명이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가 나진 않지만 나도 농사를 지어볼까 하는 생각을 해                     또 행안에 귀촌한다면 내가 올 때보다 더 좋고 편안한
                   본다.                                               곳이란 생각이 들도록 해 주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더
                     점심을 먹고 어제 부른 가곡 몇 곡을 흥얼거리는데                     열심히 지낼 생각이다. 나는 행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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