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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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운데에 있는데다 이사
오는 사람에 대한 동네 분들
의 관심은 피할 수 없는 것이
고, 또 한편으로 40여년 도시
생활이 몸에 배어있는 나의
태도는 본의와는 달리 오해의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
지만, 직장생활 탓에 두어 주
에 한 번씩 내려와 생활하는
것이 서로 적응기간으로 좋은
역할을 해 준 거 같다.
예전 살던 분은 집에 딸린
정원만들기
밭을 활용하여 많은 소득을
올렸다는데 그 좋은 땅에 황
토를 성토하고, 아까운 밭을 시커먼 비닐로 덮어놓는 진한 현관 벽공사와 낮은 텃밭에 성토 작업을 했고 다
등 동네 분들이 보기에 금싸라기 같은 땅을 내팽개치 음 해에는 담을 허물고 정원을 만들었다. 2016년에는
듯 하는 게 영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부 싱크대 공사를 하여 생활 기반을 마련하고 서울
한편으론 어쩌다 한 번씩 시골에 내려오면 새벽부터 집을 줄여 일부 이사를 했고 2017년에는 비닐하우스
일어나 서울행 차 시간 맞춰 뛰쳐나가기 직전까지 밭 를 설치하고 닭장을 만들었다.
에서 풀 뽑는 모습이 안쓰러웠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특히, 꽃을 좋아하는 아내가 시골 정주 조건의 하나
농약을 안 쓴다고 말씀드렸는데도 풀약 통을 메고 오 로 내건 예쁜 정원을 만들기 위해 틈틈이 꽃밭을 조성
신 동네 분을 말리며 ‘내 땅 내 식대로 해 보려는데 왜 했다.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꾸민다는 원칙으로 큰돈
그럴까’ 하는 서운함도 있었다. 그럴 땐 내가 만든 고 을 들이지 않고 작은 나무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그렇
추이랑을 보고 오전에 어느 분은 넓다고 하고 오후에 지만 꾸준히 가꿔나갔다. 멀리 내장까지 가서 밭에 있
어느 분은 너무 좁다고 말씀하던 것을 떠올리며 다들 는 자연석을 주워오기도 하고, 근처 도로공사에서 발
생각이 다르구나 하고 웃음으로 넘기곤 했는데 그것 파한 바위 돌을 실어와 화단을 조성하고 고성산 아래
이 반갑다는 인사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택지를 조성할 때 흙을 얻어다 붓기도 했다. 우리 집에
서 가장 비싼 나무는 정원 왼쪽 붉은 꽃사과다. 이 나
무는 양재동 꽃시장 출신으로 지하철, 버스를 번갈아
정원에는 새로운 꽃들이 타고 서울 집에 가져갔다가 다음날 고속버스에 싣고
왔다. 막상 심으려니 바닥이 예전 진입로여서 굴삭기
매일 피어난다 를 빌려 콘크리트를 깨뜨리는 대 작업을 한 사연을 가
지고 있다. 지금도 매일매일 새로운 꽃들이 피어나는
집을 구입한 후에는 매년 생활에 필요한 보완 작업 것을 보면서 아직 이른 시기이지만 인생의 가장 행복
을 꾸준히 하였다. 첫 해에는 준공 검사를 마쳤으나 미 한 일은 정원을 가꾸는 것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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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5_나는 귀촌인, 행안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