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2019년01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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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현 컬럼
(좌)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II, 1912 살롱 앙데팡당 출품 (우) 마르셀 뒤샹, 샘, 1917, 사진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잡지 291 기고, ⓒADAGP
에스프리 누보 과정의 표현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기계의 이미지에 매달려 인체를 기계적인
성의 오브제운동으로 다루게 되었다. 1912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살롱
새로운 정신 앙데팡당≫에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 2』를 출품하였다. 뒤샹의 초기 작품
중 가장 파격적인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기계와 육체가 결합한 듯한 이름을
가진 해체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이는 당대 신기술인 활동사진을 어떻게 회
화로 풀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다 만든 작품이다. 머이브릿지 등 당대에 활동사
김구현(AIAM 미술 경영연구소 대표)
진을 연구했던 사람들은 모델에게 쫄쫄이 옷을 입힌 뒤 그 옷에 관절을 표시
하고 연속으로 사진을 찍어 신체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형들 중에 의사가 있
었던 뒤샹은 이런 신기술들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회화에 적용했다. 회화성
2013년 2월 13일, 런던의 ≪바르비칸 갤러리≫에서 ‘뒤샹’ 축제가 벌어졌다. 이 부정되고 조형성을 강조한 이 작품은 1913년 뉴욕 ≪아모리 쇼≫에도 출
프랑스 출신의 미국 현대미술계의 거장 마르셀 뒤샹의 회고전 개막식에는 최 품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1915년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주로 뉴욕에
초의 ‘레디메이드’ 작품인『자전거 바퀴(1913)』를 비롯해서 진기한 작품들이 서 거주한다. 1917년 4월 10일에 개최된 뉴욕 제1회 ≪독립미술가협회전(앙
관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끌어 모았다. 세계 유수의 미술전문가들은 난 데팡당)≫에 ‘리처드 무트’라는 가명으로 철물점에서 구입한 흰색 도기로 된
해한 20세기 현대미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마르셀 뒤샹의 생 남성용 소변기를『샘(Fountain)』이라는 작품을 출품한다. 바로 <개념미술>의
전 어록의 행간을 음미해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나 자신은, 역사상 존재 첫 출발 시점이다. 당시 미국에 갓 도입된 ≪앙데팡당≫전은, 반(反)아카데미
했던 모든 미술사조라는 완제품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일종의 시제품이다.” 즘을 추구하는 화가들이 조직한 미술전으로 작품 전시에 어떠한 제한을 받지
않고 회비 6달러만 내면 작품 전시를 할 수 있었는데, 너무 파격적인 작품이라
마르셀 뒤샹은 본명이 앙리 로베르 마르셀 뒤샹으로서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전시 여부를 두고 협회 운영위원회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운영위원회 회의결
블랭빌에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2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 과, "우리가 어떤 정의를 채택하든지 간에 그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며, 비도덕
는데, 뒤샹의 큰 형 쟈크 비용은 화가, 작은 형 레이몽 뒤샹은 조각가였다. 뒤 적이고 천박하여 미술품으로 정의될 수 없다”고 결론 내리면서 끝내 이 작품
샹의 초기 작품들은 그에게 전원 풍경이나 가족을 그린 스케치와 유화였다. 은 전시되지 못했다. 반 아카데미즘을 추구하는 화가들조차 『샘』을 “미술품으
그러나 <인상주의>, <포비즘>, <큐비즘>등의 영향을 받은 뒤 <입체주의 그 로 정의될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은 이미 미술 작품은 어떠해야 한다는 기준
룹>에 참여하지만 연속사진 등에서 자극을 받아 정적인 큐비즘이 아닌 운동 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전통적인 아카데미즘을 극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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