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2019년01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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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마르셀 뒤샹, 위대한 유리, 1915-1923 제작 ⓒADAGP (우) 2017년 파리 마레지역 타데우스 로팍 화랑의 마르셀 뒤샹 회고전에 전시된 '술병 건조기'





                          ADAGP 글로벌 저작권자로 등록되었다는 의미는 곧, 전 세계 조형미술 생태계에 작가 고유의 ‘개인 브랜드’를
                          정통 계보에 올림으로써 시장 경쟁력 및 인지도의 확장여부를 투명하게 추적할 수 있는 기대 효과를 동반한다.









            대적인 배경은, 기존의 유럽 중심에서 벗어나 뉴욕이 세계 미술계의 구심점으       공급자인 작가의 통찰과 직관에 위배되는 ‘상업주의’의 오류나 심각성을 수요
            로 떠올랐을 시기와 일치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     자인 대중들에게 경고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점에 대해 확신을 가
            히 1960년대에 자리를 잡은 <사설화랑>들 때문이다. 현대 미술사를 이끌어      졌던 마르셀 뒤샹은 다음과 같이 역설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예술품은
            갈 스타를 배출하는 에너지원 차원에서 민간 자본이 미국 미술시장을 움직이        두 개의 극한을 강요한다. 한쪽 극에는 관객이 있고 정 반대쪽 극에는 예술가
            는 원동력이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 태동한다. 여기에 유럽의 전통이 대      가 존재한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나는 예술가의 시각보다는 관객의 시선
            량생산을 근간으로 하는 미국식 산업자본과 연계되어 틀을 잡은 데서 비롯된        이 훨씬 더 중요하고 더욱 마음이 끌린다.” 더 나아가, 자신의 작품 브랜드 가
            다. 군주, 국가, 귀족 등이 미술의 주요 후원자로 여겨졌던 19세기 유럽전통은    치도 비례해서 소장할 컬렉터에 대한 배려심 역시 마르셀 뒤샹이 [재판매권]
            그 안에서 새로운 부르주아 계층의 등장으로 구도가 바뀌기 시작했고 그 변        을 보장하는 사실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모하는 틀이 미국으로 오면서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시민 계층이 주요한 후
            원자로 등장한다.                                       궁극적으로 [글로벌 저작권자]로서 마르셀 뒤샹이라는 독보적인 위상을 각
                                                            인시켜준 계기는, 바로 1960년대 초엽에 뉴욕을 중심으로 출현한 <팝 아트
            그뿐 아니라, 특정한 지명도 중심의 개인보다 평범한 회원들 중심의 <협력 화      >와 파리에서 등장한 <누보 레알리즘>이란 양대 미술사조 덕분이다. 왜냐하
            랑>이라는 새로운 유형이 1960년대부터 뉴욕을 중심으로 자리잡기 시작했        면 미국의 <팝 아트>는 도시의 정보문화가 만드는 친 대중적인 이미지를 대
            다. 주류 사설 화랑에 대한 직접적인 반동으로 태어난 협력 화랑은 주로 경제      량생산된 수단이나 방법에 얹어서 미술을 대중적인 영역으로서 독자적으로
            적으로 자유로운12-20여명의 미술가들이 모여 각자가 매월 정해진 만큼의        확대시키는데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
            회비를 내어 운영한다. 매월 적립된 기금으로 전시장의 전세 또는 월세, 운영      이 아닐런지. 반면에 프랑스의 비평가인 피에르 레스타니에 의하여 결집된 <
            비, 직원의 급여 등을 충당하며 대신에 각자 1년에 한번 또는 2년에 한번씩 개    누보 레알리즘(신사실주의)>는, 제2의 자연으로 화해 버린 도회적인 현실에
            인전을 갖는 시스템이다.                                   대응하는 또 다른 유형의 포퓰러 아트를 추진하고 있었다. 오브제를 집중 혹
                                                            은 조합시킨 ‘아상블라쥬’와 폐품을 쌓은듯한 ‘정크 아트’ 등이 궁극적으로 마
            따라서 어쩌면 예술과 시장 사이의 역설적 관계에 대한 막연한 질문에 본질        르셀 뒤샹 자신의 신념을 진화시켜 계승한 소위 <네오 다다이즘> 계열에 속
            적인 답변을 찾고 있던 마르셀 뒤샹으로서는, <사설 화랑>이나 <협력 화랑>      하기 때문이다.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한치 망설임 없이

            1)  라틴어로 ‘만인을 위한’이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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