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2019년01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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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롯본기 미드 타운에 위치한 디자인 전문 뮤지엄, 21_21 DESIGN SIGHT 민예품에서 전시 품목을 선정중인 세계적 제품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
민예관의 정문 본관 모습. 야나기 설계 서관. 야나기가 사망시까지 생활
일본 민예관은 「민예」라는 새로운 미 개념의 보급과 「미의 생활화」를 지향하 에 타마미술대학 종합디자인학과 교수인 후카사와 나오토가 일본 민예관 관
는 민예운동의 본거지로서 1926년에 사상가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등 장에 취임했다는 소식에 민예관의 공예품에 대한 확실한 시각을 읽을 수 있
에 의해 기획되어, 수많은 후원가들의 원조로, 1936년에 개설된 박물관이다. 「 었다.
민예품의 수집과 보관」 「민예에 관한 조사연구」 「민예사상의 보급」 「전람회」를
주요활동으로 한다. 이는 21_21 DESIGN SIGHT의 설립과정, 활동내용과 매우 민예운동을 창시하고, 또 민예관의 초대관장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그 모든 활
유사하다. 즉 전시결과물은 판이하게 다를지라도, 두 미술관 모두 각 시대의 동은 조선 도자기와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1914년, 야나기는 조선에서 온 지
생활, 일상을 보여주는 대상에 대한 연구와 전시를 하는 공통점이 있다. 즉 공 인으로부터 선물받은 백자 항아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감동을 「그 차가운
예를, 미술관의 유리 전시대 안의 유물로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일상을 형성 토기에, 인간의 따뜻함, 고귀, 장엄을 읽어내리라고는 어제까지 꿈도 꾸지 않
하는 생활용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조선 민예품, 공예품을 미술품으로 생 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그 백자들이다. 내가 유학 시절 머물던 문부성 유학생
각한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또다른 미술, 생활용품 회관은 동경 고마바역의 서쪽 출구 근처이다. 이 고마바역은 동쪽 출구가 동
으로 생각하였음을 드러낸 것이 제품디자이너의 관장임명이다. 민예관은 초 경대에 접하여, 매우 활기가 찬 것에 비하여, 서쪽 출구는 근대문학관과 고바
대 야나기의 뒤를 이어 장남인 제품디자이너 야나기 소우리(1915-2011), 야공원, 유학생회관, 그리고 이 민예관이 위치한 매우 한적한 주택가이다. 민
그리고 현재 5대를 제품디자이너인 후카사와나오토가 이어받았다. 예관은 오래된 전통가옥으로, 신발을 벗고 잘 손질된 마루를 걸어 들어가면,
화려한 전시 라이트가 아닌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 아래, 조선 도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에게는 아들 3형제가 있었으며, 모두 야나기의 소장 자기, 민화 그리고 일본의 생활 용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언제 가보아도, 2명
품을 보고 자라서 예술분야에서 활약하였다. 장남인 야나기 소우리는 밀라노 이상의 내방객이 없을 정도의 한적한 박물관으로, 이곳은 유학생활 내내, 내
디자인 비엔날레에서 버터플라이 의자로 금상을 수상한 전후 일본을 대표하 비밀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는 제품 디자이너이고, 차남은 동경예대, 퇴직후에는 무사시노미술대학의 서
양미술사 담당 교수였고, 3남은 원예정원평론가, 원예정원사이다. 그 시대 프 소액의 입장료를 내면, 이 커다란 조선의 도자기들로 가득한 옛 생활공간, 옛
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미술사학자인 대신, 제품디자이너에게 민예관 관장을 일상의 시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여기서 백자는 예술품이 아닌, 그 당시의
이은 것에 의아함을 가졌었고, 보수적 장남 승계원칙인가 했었으나, 2012년 일상을 보여주는 생활용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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