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2019년01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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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은 칼럼















        도로시랭(Dorothea Lange), 미국태생, 1895~1965



        희망이 있는 한 절망은                                    “Migrant Mother, Nipomo, California” (1936) Dorothea Lange
                                                        가난에 찌들어 보이는 중년 여성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양 옆
                                                        으로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 머리가 나뭇가지처럼 엉겨 붙은 여자아이가 둘, 무릎에는 또
        한순간이다                                           다른 젖먹이가 안겨 있다. 여인의 표정에선 희망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주식시장 붕
                                                        괴와 함께 미국 경제를 초토화시킨 1930년 대의 미국 대공항 시대를 말해 주는 상징적
                                                        인 사진이다.
         김세은(강남대학교 미술문화복지 교수)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온 도로시 랭은 무엇을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
        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중요시 했다. 이를 위해 대상을 왜곡하거나 꾸미지
        않았고, 대상을 환경의 일부로서 실제처럼, 그리고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속
        에서 찾고자 주목했다.

        미국 여성들의 사진 활동은 이미 1차 세계대전 종군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도
        로시 랭은 처음부터 주목받지는 못했다. 미국 동부의 뉴저지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는 7살 소아마비로 오른편 다리가 불편함에도, 카메라 하나 없이 사진작
        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거의 독학으로 사진을 익히며 작업할 정도로 예술에
        대한 열정이 강한 여인이었다. 당시 뉴욕은 사진 예술의 선구자인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itz)가 뉴욕 5번가에서 사진 화랑을 열고 유럽의 전위 예술가들
        을 소개하는 시기였다. 20대 후반인 1918년 도로시 랭은 사진 일을 찾아 친구
        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침내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려 초기에는 초상사
        진에 열중했다. 이 후1932년 미국을 덮친 실업과 불황 속에서 도로시 랭은 새
        로운 작업의 모티브를 만난다. 1932년 그녀의 작품 <화이트 엔젤의 빵 줄서
        기>가 보여주듯이 랭은 이미 스튜디오 초상화를 벗어나 샌프란시스코 거리
        에 실업자들이 줄을 서고 부두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상황에서 랭은 다른
        사진작가들처럼 카메라를 메고 거리로 나왔다. 랭은 “내가 나에게 돈을 내는
                                                           “White Angel Breadline” (1932) Dorothea Lange
        사람들의 사진만 찍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이
        후 버클리 대학 경제학과 폴 테일러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그의 조사팀에 합
        류하여 사진을 찍었고, 이 때 그녀는 하루 6천명의 이재민이 먼지 폭풍을 피해
        캘리포니아로 유입되는 현실을 직접 목격한다. 1934년 도로시 랭은 대공황에      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포토저널리즘과 시각적 의사소통에 대한 획기적
        허덕이는 실업자들을 적나라하게 사진으로 찍어 다큐멘터리로 엮어낸다. 이         인 전환점이 되었다.
        후 1935년 미국 뉴딜정책으로 농업안정국(FSA)이 전개한 캠페인에 도로시 랭
        은 지도자로 참가하여 미국 남부 여러 황폐해진 농촌의 실태를 예리하게 사진       도로시 랭은 1941년 탁월한 사진작가로 구겐하임 상을 받는다.
        에 담아 포착한다. 그녀가 맡은 주제는 “이주 농민들”로, 이를 가장 대표하는     특히 1939년에 출간한 《아메리카 탈출기 An American Exodus A Record of
        사진이 바로 1936년에 찍은 <이민 노동자의 어머니(Magrant Mother)>이다.  Human Erosion》는 문장과 사진으로 엮은 장편의 농민기록으로 예술작품의
                                                        높은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수용소로 끌려가는
        그녀의 사진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의 기록과 정서적 감동       일본계 미국인들의 집단 행렬을 사진에 담아 발표하였고, 전쟁 후에는 《라이
        이 공존하기 떄문이다. 그녀는 경제학자인 남편과 함께 서부의 빈곤과 지주        프 Life》지에 작품을 소개하는 등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서 활발히 활동하면
        들의 착취문제와 이주노동자들이 당하는 비인간적인 상황을 찍어서 세상에          서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 예술사진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도로시 랭
        알렸다. "나는 마치 자석에 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슨 말     은, “카메라는 카메라 없이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도구”라
        을 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억하       고 한 바 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삶의 막다른 골목에 서있는 인간의 내면
        고 있다." 도로시 랭의 사진들은 당시 미국의 열악한 농업환경에 대한 진지       세계를 보여준 랭의 사진세계는 한 시대의 사건들의 기록에만 머물지 않았기
        한 고찰로 각계의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사회 비평가들뿐만 아니라 문예인        에 사람들의 가슴에 크게 울림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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