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2019년02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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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퐁피두 센터의 _에르제 탄생 100주년_ 회고전 입장을 위해 줄을 선 관객들 (우) 내부 전시장 모습






                           에르제는 벨기에 브뤼셀 출신의 만화가다. '에르제'는 필명이고 본명은 조르주 프로스페르 레미로 전해진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모았던 만화『땡땡(틴틴)의 모험』시리즈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초기 유럽만화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에 "유럽 만화의 아버지" 라고도 추앙된다.









            되었다. 특히『극동에 간 땡땡』시리즈 연재를 앞두었을 때 에르제가 잡지에 "다     마침내 ≪에르제 스튜디오≫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음 만화는 땡땡이 무지하고 비열한 중국인들을 상대하는 내용"이라고 예고했
            을 정도로 인종차별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예고 공지에 대해 벨기에에      2006년 12월 20일부터 2007년 2월 19일까지 전시했던 파리 퐁피두 센터
            있는 중국 유학생들이 반발하였는데, 이 중 창총젠이라는 유학생이 에르제에        를 시작으로 영국, 덴마크를 거쳐 아시아 최초로 국내에서 전시되는 땡땡 탄
            게 접근했다. 창은 에르제와 중국의 문화, 학문, 중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 등을    생 100주년 회고전 <에르제: 땡땡전>이 2019년 04월 01일까지 ≪예술의 전
            이야기하였고, 이후로 에르제와 친구로 지내게 되었다. 창과의 만남은 에르제       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로 성황리에 전시
            에게 있어 중대한 전환기가 되었다. 창과 대화하면서 에르제는 스토리 라인의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때 ‘친 나치’ 행각으로 갖은 비난을 감수해야
            중요성과 참고 자료 조사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의 만화를 진지하       했던 에르제와 우리 화단의 몇몇 ‘친일 인사’들의 역사청산 실패와 맞물려 비
            게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후에 창은 땡땡의 모험 시리즈 중 『푸른 연꽃』     교해 볼 때 심란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발견된다. 일단 종전과 함께 갑자기 반
            에 등장하는 땡땡의 인간적인 친구 창의 모델이 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전된 정치적 상황에서 어쩔 수없이 철퇴를 맞았다는 점은 일치하지만, 에르제
            기간 중에 에르제는 ‘친 나치’ 매체 <저녁>에 협조한다. 1944년 벨기에 해방   는 이 시련을 오직 창작에 몰두함으로써 극복했던 반면에, 우리의 ‘그들’은 시
            되자〈저녁〉신문에 연재된 땡땡의 모험 이야기는 종료된다. 해방 이후 친 나치      도 때도 없이 변절자가 둔갑한 독재정권이나 두고두고 친일 청산을 내건 학계
            세력을 척결하려는 벨기에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에르제가 독일군에 의해 관       의 목소리에 의해 지리멸렬한 한국정치사가 되풀이 될 적마다 어떤 긴장을 주
            리되었던 신문에 그림을 게재하고 나치스에게 저항을 하지 않고 소극적인 태        는 요인으로 도마 위에 올려져 왔다. 심지어 최근에는 역사적폐 청산을 위해
            도를 보였다는 이유 때문에 벨기에 사람들은 그를 냉대했다. 따라서 에르제는       친일파가 그린 표준영정 지정을 해제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파를 이장
            2년 정도 실직자로 지내야 했고, 만화계로 복귀할 길 또한 막막해지게 되었다.     해야 한다는 지적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의 논리를 단순히 옳다, 그
            하지만 레지스탕스 계열의 출판업자 레이몽 르블랑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르다 고정된 담론에 사로잡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염없이 반복한다면, 결
            그를 만화계로 복귀시켜 주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따라서 그와 함께 작업       국 항상 잣대를 들이댄 쪽이나 질타 당하는 쪽이나 긍정적인 학습 효과는커
            한 『땡땡』잡지 제1호가 1946년 9월 26일에 출간될 수 있었다. 이런 복귀는 다  녕, 아무런 반성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아무쪼록 올해를 기점
            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에르제는 개인적인 슬럼프를 겪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        으로 우리 화단의 추한 ‘역사적 멍에’로 인해 지친 삶을 영위하는 미술인들이
            서도 에르제는 섬세한 기술적 작업과 방대하고 치밀한 조사에 세부적인 일까        고된 사슬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영혼이 새로운 정신에 의해 정화 되기를 진
            지 요구되는 『땡땡 달나라에 가다 』 편을 그리기 위해 공동 작업자를 모집해서     정으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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