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전시가이드 2024년 12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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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길, 옻칠지에 먹, 27×59cm, 2023






            제물론(齊物論)에 따른 ‘비우는 데 즐거움이 있다’는 ‘낙출허’(樂出虛)와도 연    저절로 생겨난다’(本立而道生), 즉, ‘자신의 기본적인 직무에 최선을 다하고 이
            관시킬 수 있다.                                       러한 기본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를 뜻한다. ‘근본’의 오랜 의미는 부모께 효도
                                                            하고 어른께 공경하는 자세를 중시하는 것이지만, 이를 지금 이 시점에서 다
            ‘북(白)을 테이블(木) 위에 얹어놓고 좌우에서 두 사람(幺)이 북을 치며 무아지   시 바라본다면 자신을 둘러싼 공동체 환경 속에서 배려, 양보, 다원적 가치 존
            경이 되도록 즐기는 형상’이라는 락(樂)은 고전 서제에서 혈혈단신 뛰쳐나와       중, 포용, 공감 등을 통해 인(仁)을 행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가
            그 의미를 그대로 품고 골을 그대로 갖추어 입체 조형인 ‘락(樂)II’(<소통의 미  는 <군자의 길, 리더의 길>(더스타갤러리/2023)에서 정명(正名), 덕풍(德風).
            학III: 문자예술, 조각과 만나다> 갤러리엠/2014)로 등장하기도 한다. 정통성  예(禮), 욕기(浴沂), 문도(聞道), 화이부동(和而不同), 동락(同樂), 근자열 원자
            을 강조할 서예가가 한 점 의심 없이 서예와 조각의 조우를 스스로 만들고 있      래(近者說 遠者來), 유어예(遊於藝), 군자의 길, 리더의 길, 바위, 늘, 박학독지(
            었던 것이다! 이는 평소 서예 내에서만 서예를 평가하고 인정하며 활용하는        博學篤志), 절문근사(切問近思), 시습(時習), 학이사(學而思), 삼성(三省), 홍의
            시대가 지났음을 선언하며 ‘전문서예가’가 아닌 ‘서예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장      (弘毅), 학여불급 유공실지(學如不及 猶恐失之), 물탄개(勿憚改), 지인용(智仁
            지훈 작가만의 오랜 소신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학교교      勇), 견현사제(見賢思齊), 광견(狂狷), 일이관지(一以貫之), 원려(遠慮), 문질빈
            육에서도 마찬가지로 제1차 교육과정(1954~1963) 시기 초등학교의 ‘쓰기’, 중  빈(文質彬彬), 락(樂), 성상근(性相近), 덕불고(德不孤), 족(足), 수(壽) 등 논어
            등학교의 ‘서예’가 제7차 교육과정(1997~2007)부터 현행의 2022 개정 교육과  를 주제로 다양한 해석과 함께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작
            정(2022~현재)까지 초·중등학교 모든 학교급을 망라하고 회화, 조소, 서예 등   가의 반듯한 생각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이 글을 통해 실천가로
            의 장르간 구분 없이 미술교과 내의 표현 내용 체계로 융·통합된 것과도 무관      서의 굳은 맹세처럼 선명하게 나타나 감동을 자아낸다.
            하지 않다. 또한 대학에서 서예 관련 전공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맥
            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공을 넘나들며 서예가 나아갈 새로운        ‘서예는 뜻을 나타내고 그림은 형을 나타내지만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이 동일
            방안들을 모색해온 각고의 노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       하다’(書畫同原論)라는 것은 결국 문장과 그림, 글씨가 같은 미감으로 예술성
            시대적 변화에 과감히 맞서 변화를 거듭하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일신우일신         을 발휘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詩書畵一致). 이는 작가의 2011 개인전 <소통
            (日新又日新)의 정신은 비단 위기를 맞고 있는 특정 분야가 아니더라도 모든       의 미학II: 문정(文情)과 서정(書情)의 소통 공간>(경인미술관)에서 명백히 밝
            분야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2009 개인전을     힌 바 있다. ‘글자로서의 의미와 형식마저도 파괴하며 의미의 표상으로서 필
            <소통의 미학I: 서예, 그 소통의 공간>(경인미술관)으로 명명하며 소통의 공     획이 가져다주는 기(氣)의 흐름을 포착하여 보는 서예로서뿐만 아니라 느끼는
            간으로서 서예가 살아가야 하는 길을 제시한 바 있는데, 이는 서예가로서 스       서예로 진일보하려는 방향성에 대한 작가의 언급처럼(‘한국 현대 서예의 흐름
            스로의 행보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어떻게 서예가 다가가야 하는가의 길을 함        과 특징’. 동양예술 63, 5~22), 관람객인 필자는 종이 위에 펼쳐진, 정연하나 예
            께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술적으로 자유로운 필획에서 형(形)의 이미지를 발견하며 그곳에 이미지가 있
                                                            고 글씨가 있고 뜻이 있음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뜻이 있고 글씨가
            장지훈 작가의 ‘군자의 길’은 공자의 논어(論語) 학이(學而) 편에 유자왈(有子    있고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曰)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君子務本)에 근거한다. 이는 ‘근본이 서면 갈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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