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전시가이드 2022년 04월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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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과 컨템포러리 아트
정전 전경
미니멀리즘 단청...종묘 제와 단순, 반복이 투영된 거대한 한 폭의 모노크롬(monochrome) 단색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글 : 박일선 (단청산수화 작가)
정전의 서쪽 바깥으로는 별묘였던 영녕전이 있다.
종묘를 세울 당시는 정전의 감실은 5칸만 있었다. 1419년(세종 원년) 정종(定
宗)이 승하했을 때 태조와 태조의 4대조를 합쳐 다섯 신위로 꽉 찬 상태여서
종묘(宗廟)는 조선이 유교 국가로서 건국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서 사직(社稷) 그 신위를 모실 수 없게 되자 중국 송(宋)나라의 예를 따라 1421년 10월 별묘
과 함께 가장 먼저 건설해야만 했던 매우 중요한 건축물이었다. 역대 왕과 왕 인 영녕전을 세워 태조의 4대조 신위를 옮기게 되었다. '조종(祖宗)과 자손이
비의 혼이 모셔져 있는 신전으로서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의미가 크다 보니 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을 지닌 영녕전을 종묘에서 옮겨온 신위를 모셨다고
축가 김중업(金重業, 1922~1988) 선생은 종묘를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 해서 조묘(祧廟)라고도 한다. 건립 당시 영녕전의 규모는 태실 4칸, 양 옆 협실
전에 비유하여 '동양의 파르테논(Parthenon)'이라 높이 평가했다. 각 1칸을 합하여 6칸에 불과했으나 세월이 흘러 봉안해야 할 신위의 수가 늘
종묘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건물로는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이 있다. 어남에 따라 계속 증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중앙에 태실 4칸, 좌우에 각각 협
지금은 정전과 영녕전을 합쳐서 종묘라고 부르지만, 원래 종묘는 지금의 정전 실 6칸씩을 두어 모두 16칸이고, 좌우 협실 양 끝에 동월랑과 서월랑 5칸이 덧
만을 지칭했으며 영녕전은 별묘였다. 붙여 있다. 홑처마에 맞배지붕, 많은 기둥, 깊게 드리운 지붕, 내부 구성 등은
기본적으로 정전과 거의 동일하며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정전과 영녕전은 장
정문인 창엽문(蒼葉門)을 통과하면 삼도(三涂)라는 세 줄로 된 돌길이 북으로 식과 기교를 절제하여 단조로워 보이지만, 왕실의 제사를 모시는 공간이기에
길게 뻗어 있다. 제례 때 왕과 세자가 제사를 주관하기 위해 걸어가는 길로 가 더욱 경건하고 엄숙하며 신성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운데가 양 옆보다 약간 높게 되어 있다. 가운데 약간 높은 길은 향로를 받들고
가는 신로(神路)이고, 동측의 낮은 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御路), 서측은 세자 그러나 종묘에는 조선왕실 제례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건물 하나가 공존한다.
가 다니는 세자로(世子路)이다. 그것은 바로 공민왕 신당(神堂)이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홑처마에 맞배지붕
삼도를 따라가면 신문(神門)에 다다르고 그 안쪽으로 국보 제227호인 장대한 의 단순한 구조에 간소하게 가칠단청을 한 아주 작디 작은 목조건물이다. 고려
규모의 정전이 보인다.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길이만 101m, 31대 왕인 공민왕(恭愍王)을 위하여 건립한 별당으로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
19칸의 동서로 길게 이어진 일자형 건물로서 보는 이들을 압도할 만큼 위풍당 왕 영정 봉안지당(高麗 恭愍王 影幀 奉安之堂)'이다. 내부에는 정면 중앙의 벽
당하며 우리나라 단일 목조건물로서는 가장 긴 건물이다. 홑처마에 맞배지붕 에 공민왕과 왕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함께 그린 영정(影幀)이, 왼
을 하고 있으며 수십 개의 둥근 기둥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떠받치고 있다. 유 쪽 벽에는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하는 준마도(駿馬圖)가 걸려있다.
난히 깊게 드리운 지붕 밑에 형성되는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가칠단청의 석간 종묘를 창건할 때 함께 세웠다고 하는데 왜 이 곳에 세웠는지 그 연유는 알 수
주와 뇌록이 서로 어울려 만들어내는 적막하고 엄숙한 분위기는 장엄하고 절 없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종묘를 복구할 때 다른 전각들과
제되며 신성한 공간임을 입증하고도 남을 지경이다. 함께 재건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멸망한 나라의 국왕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한
또한 땅바닥에 닿을 듯이 길게 덮인 기와지붕의 빛바랜 검정색을 보자면 절 나라를 다스렸던 국왕을 추모하는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했다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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