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전시가이드 2021년 07월 이북
P. 43
(좌)자신이 만든 와인을 시음하는 중 (우) 자신이 제작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라파엘 모네오 ⓒADAGP
라파엘 모네오는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로 한국문화와 재회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있다.
일반적으로 스타 건축가라면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게 마련이다.
그런 식으로 어디서 누가 봐도 그 건축가가 지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각층의 구조는 서로 독립적인 외관을 지니고 있다. 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건축가이면서 동시에 교육자인 라파엘 모네오는 그런
특히, 독립적인 선율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화음의 발전’에 기여했듯이, 라파 ‘티 내는 스타일’이 없다. 대신 그의 건축물이 자리잡을 대지의 이야기를 담는
엘 모네오 역시 다양한 면적의 크기에 따라 ‘단층 형’과 ‘복층 형’으로 구분하 다. 집요한 땅 읽기를 거쳐 그 땅에 원래 있었던 듯한 건축물을 짓는다. 그러한
였을 뿐만 아니라, 차 상층에 복층 구조로 ‘스카이펜트’ 2 가구를 배치하고 최 단편적인 면모일 수는 있겠지만, 그는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삼시세끼 한식만
상층 2개층에다가도 마찬가지로 복층 ‘슈퍼펜트하우스’ 1 가구를 배치한 것이 먹었다고 한다. 된장찌개가 특히 맛있다고 했다는데, 나이 들수록 익숙한 음
다. 어떻게 보면, 개별 프라이빗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특수 계층의 프라 식을 더 찾게 되기 마련이니 자연스레 ‘토종 발효식품의 맛’을 통해 한국을 서
이드까지 충족시켜주는 결정체라고나 할지. 한 마디로 라파엘 모네오의 대위 슴없이 받아들인 것이 아닐지. 어느 나라에서도 그 장소의 지역적 맥락을 살
법은 ‘현대 한국인’의 정서에 걸 맞는 ‘럭셔리의 정수’를 완벽하게 구현시킨 셈 펴서 건축물을 짓는 건축가다운 입맛이 아닐지. 공교롭게도 라파엘 모네오는
이다. 그러나, 이 경우와는 정반대로 라파엘 모네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다 고국에서 15년째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 계기는, 어느 날 문득
음 사례에 초점을 모아 보자. 1985년 스페인 메리다 지역에 지어진 ≪국립 로 어떤 일에만 푹 빠지게 되면 다른 것의 존재 의미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
마 박물관≫은 세계 건축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업화 닫고 나서부터. 그러다 우연히 와인에 매료되었고 스스로의 삶이 얼마나 건
로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건축물이 마구 지어지던 시기였다. 박물관은 기 축에 고립되어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나. 그토록 땅 위에서 평생 집 짓기
원전 150년경에 있었던 로마 유적지 위에 지어졌다. 붉은 벽돌로 ‘로마식 아 를 했던 건축가는 와인 농사를 지으면서 또 다른 땅을 배운다는 것. 이는 라파
치벽’을 옛 돌담 사이에 겹치지 않게 쌓아 올렸다. 밖에서 보면 박물관은 마치 엘 모네오에 이어 두 번째로, 올해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스페인 건축가 그룹
로마 시대부터 있었던 건물처럼 보인다. 건물은 지하 뿌리부터 유적지를 품고 RCR의 지향점과 비슷하다. 자연 환경과 땅의 맥락을 중심에 두는 지역 건축
있고, 거기서 나온 유물은 상층부에서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 이라는 점에서다. 건축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주류에 속하지 못했던 스페인
지 과거를 되살린 집이었다. 에 요즘 세계 건축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맥
락에서,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작품을 통해 ‘고유의 멋과 맛’을 길들이고자 한
최근 들어와, 라파엘 모네오는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로 또 한번 한국문화와 다면, 그가 지향하는 목적지가 어디이든지 간에 그 땅 위의 숙성된 정서와 적
재회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있다. 일반적으로 스타 건 극 교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쪼록 우리 조형미술인들이 코로나 이후 <
축가라면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게 마련이다. 그런 식으로 뉴 노멀 시대>의 ‘양극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새로운 정신’을 설계도 삼아 세
어디서 누가 봐도 그 건축가가 지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스타일을 만들 계인들의 입맛을 훔치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