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2019년04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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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GP 옴니버스  열전















































        ADAGP 글로벌저작권자 연합회 공식사이트에 게재된 르네 마그리트 등록 페이지



                                           1)
        ADAGP 옴니버스                                      그러나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경우, 가정사가 불행한 다른 화가들과 달리 그
                                                        의 아버지는 대개 엄격한 이미지로 굳혀 지다시피 한 전형적인 상과는 크게
        열전(10)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잃은 아들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그의 재능
                                                        을 인정하고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 정서가 안정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동생도 둘 있었다. 레몽 마그리트는 그와 전혀 성향이 안
                                                        맞아 지극히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비즈니스맨으로 성장한 반면에, 예술가적
        김구현(AIAM 미술 경영연구소 대표)                           성향을 공유했던 편곡 가이자 가수가 된 다른 동생 폴과는 평생 우애를 지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르네 마그리트는, 그를 적으로 생각하는 화가들의 생애와 반대되는 유복한 환       결혼 후 마그리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했
        경에서 자라 살아 생전에도 인정받고 죽어서는 더 추앙되는 삶을 살았다. 성       다. 생계를 위해 벽지 공장에서 장미를 그리기도 했고, 브뤼셀 시청과 기업들
        격도 좋은 편이라 인간관계도 원만하고 낭만적인 기질이 다분해 부부 사이 금       이 발주하는 각종 포스터 작업을 꽤 오랫동안 할 수밖에 없었다. 화가가 자신
        슬도 매우 좋았다고 알려져 있다. 부와 명예에 이어 오직 한 여인과의 순애보      의 작품이 아닌,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슬픈 상황이었지만, 그는 이
        같은 사랑. 하지만 그러한 외면적 성공 신화로 포장된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       러한 현실 속에서도 화가로서 정체성을 잘 지켜나갔다. 한 천재 화가의 뛰어
        다 보면 완전히 굴곡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36년에 바람을 피우면서 아내가    난 상상력이 담긴 당시 포스터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젊은 시절 마그리트의 생
        눈치 못 채도록 친구를 설득해 아내도 바람 피우게 만들려고 시도하다가 아내       활 속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에게 들켜 4년간 결별하다 재결합한 적도 있다. 물론, 이러한 원초적 약점이
        오히려 갖은 스캔들과 막장 스토리에 매몰된 여타 예술가인 척하는 속물들보        피카소를 비롯한 다른 20세기 좌파 예술가들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르네
        다 훨씬 인간적으로 여겨진다. 그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 만성 정신병을 앓던      마그리트 역시 평생 골수 좌파이자 벨기에 공산당원이었다. 1950년 벨기에
        어머니가 자살하여 마음에 큰 상처를 받기도 하였다.                    공산당에 보낸 편지에 나온 내용을 살펴보자. 이를 통해 자신의 예술관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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