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전시가이드 2022년 09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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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브뤼셀 IFA 전시장 심사장면     (우)이희옥, NO WAR, 130 x 161cm, Acrylic on  canvas, 20~







            라 확신한다. 바로 그 시발점에서 국내 최초로 개최되었던 ≪AIAM & ADAGP   면에 이희옥 작가의『NO WAR』화면에서는 이토록 ‘불길한 원근법’은 사라졌지
            글로벌연합회원전≫의 출품작『NO WAR』는 단연 압권이었다. 이탈리아의 <       만, 회색 건물의 음침한 검은 그림자는 오히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에 등장
            초현실주의> 화가 조르지오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거리의 신비와   하는 ‘날카로운 대각선’ 구조의 다리 아래 흐르는 암녹색 강물과 절묘하게 오
            우수』를 부분적으로 패러디 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는, 반년 전에 발발한 러     버랩 되면서 여인의 ‘절규’가 들릴 정도로 한층 더 강렬한 공포감을 심어준다.
            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진 성폭력으로 유린당한 여성들의 ‘인권 말살’
            에 대한 경종을 울리자는 것이다. 천진난만하게 굴렁쇠를 굴리던 원작의 소녀       결론적으로, 이희옥 작가는 ≪AIAM국제앙드레말로협회≫ 회원 작가들 가운
            는 성년 여인의 설움에 복받쳐 오열하는 나체로 대체되었다. 소녀의 왼편에        데 가장 현장감이 생생한 주제를 선택해 가장 초현실적인 공간에 처박힌 인
            위치한 하얀 색의 아케이드로 시선을 이끌던 원작 화면은, 이희옥 작가의『NO      간의 비현실적인 내면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이희옥 작
            WAR』에서는 어느덧 여인의 정면에서 압도하듯 펼쳐져 암울한 전쟁의 잔재        가의『NO WAR』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던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탄생했
            를 연상시키는 짙은 잿빛 건물로 둔갑해 있다. 키리코의 원작에서 현기증이 날      다. 어쩌면 실제 전쟁의 참상보다도 훨씬 더 잔인한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
            만큼 어지러운 깊이로 후퇴하는 아케이드의 구성은, 공허한 지평선을 향해 급       판도라 상자>를 열어 젖히는 바람에 인류가 여태껏 겪어본 적 없었던 전인미
            격히 돌진하는, 아득한 원근법으로 나타난다. 이 숨 막힐 것 같은 정적이 흐르     답의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재앙을 몰고 왔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
            는 화면은 빛에 의해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그림자로 가득 차 있는 반면, 다    고, 천만 다행으로 그 와중에서도 ‘희망’이 버티고 있었다. 창립한지 어언 30년
            른 하나는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두 화면의 간격이 이루는 긴장과 불안의 색조     이 다가오는 ≪AIAM국제앙드레말로협회≫에서 발견한 ‘미래의 희망’은 바로
            는 노란색이다. 이 안에서 움직이는 상태 그대로 홀연히 정지한 소녀는 건물       회원 작가들의 각성이다. 여기에 기회마저 주어졌으니 이제부터 이희옥 작가
            뒤에 잠복해 있는 위협적인 그림자에 지배당하는 느낌을 준다. 키리코의 원작       의 ‘도전의 몫’은 오로지 스스로의 열정과 의지에 달려있다. 앙드레 말로는 “예
            이 불길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사물의 감추어진 부분을 슬며        술의 세계는 항구불변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변신을 촉구하는 것”이
            시 드러내기 때문이다. 키리코는 “그림이란 눈으로 보는 현실의 건너편에 있       라는 명언을 남겼다. 궁극적으로 이희옥 작가가 처했던 과거의 환경이 미래를
            는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드러내면서 감추는, 또는 감추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결정권을 가진 주체인 “그녀 자신”이 설정
            면서 동시에 드러내는 세계의 신비가 그림 속에 담기게 되고 보는 이는 너무       한 궤도에 따라 작품의 미래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 화단에 만연해있
            나 현실적인 풍경 속에서 오히려 강한 비 현실감을 느끼게 된다. 키리코의 그      는 ‘젠더 논란’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류 작가라고 해서 반드시 가정이라는 틀
            림은 화면 속 사물이 관람자의 기억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다양한 의미를 갖       과 사회라는 울타리에 의해 영향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예
            게 된다. 키리코의 회화는 '낭만적'이고 '연극적'인 요소가 강하다. 또한 단순한   술가의 속성이 영원한 ‘자웅동체’일 필요 또한 없다. 아무쪼록 <형이상학>이
            화면, 사실적인 양식, 세부적인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내용의 해석을      라는 ‘본질적 코드’를 통해 대중과 교감하는 조르지오 데 키리코처럼 【ADAGP
            가능케 하는 전통적인 주제나 서사적인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키리코       글로벌 저작권자】의 일원으로써, 이희옥 작가 스스로 차용한 거장의『원작 메
            는 작품 속 사물들이 벌이는 다양한 조합과 병치를 허용함으로써 ‘불길한 예       시지』를 기억하기 바란다. 아무쪼록 그 경계를 초월하는 순간 다양하고 변화
            감이 가득 차 있는 신비의 세계’라는 말로 그의 회화를 해독하도록 한다. 지금     무쌍한 ≪변신≫을 거듭함으로써, 이제 갓 아프락사스의 알 껍질을 깨기 시작
            도 그가 그려낸 모든 대상들은 스스로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으며, 앙드레      한 그녀의 ‘새로운 정신’을 추종하고 따르는 후학들에게 원대한 ‘희망’이 되어
            부르통(Andre Breton)이 말했듯, ‘치유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반  주기를 진정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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