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전시가이드 2021년 08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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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라이언 갠더, 달리기가 최선의 힘이다, 2017 (우) 라이언 갠더, 준비하다보면 만사가 해결된다, 2015 ⓒADAGP








            서 떨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작품을 선보이기도 했고, 딸이 찢고 구멍        어떤 것에 대해 독립적이고 주관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나름의 용기와 노
            낸 노트의 페이지들을 재배치한 작품도 있다. 라이언 갠더의 작품은 한 마디       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고유의 시선을 확보하기에 앞서 주위 사람들의 반
            로 정의할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그는 꽤나 익살스러운 스토리      응을 살피게 되는 것이다.
            텔러라는 점이다. 교묘한 은유가 숨겨져 있는 그의 작품에서 이야기를 발견하
            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그는 사람들이 그저 작품을 보며 떠오르는       2017년 3월 29일부터 5월7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국내 첫
            것들로 자신이 시작한 이야기를 이어가길 바란다. 엘리트주의나 미술에 대한        개인전을 갖는 영국 개념미술가 라이언 갠더가 또 다시 한국을 찾아왔다. 지
            지식은 내려놓고 말이다. “나는 작품 제작의 이유가 되는 나만의 이야기를 가      난 6월 24일부터 9월 19일 까지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에서 ‘개인 초대
            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관객이 그것을 다르게 읽기를 바란다. 작업이 충분히      전’이 진행 중이다. 전시 제목 「변화율 (The Rates of Change)」은 자신의 작품
            모호하고, 해석의 여지가 있고, 의미로 가득 차 있어서 관객이 작품의 다른 부     에 시간적 속성을 부여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갠더는 “관람객이 스
            분을 다른 방법으로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작업의 포인트가 된다는 것이     스로 무언가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모든 것을 직접 알려 주는 것보다 훨씬 더
            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의 의미만 가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기 때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한 이야기의 ‘서두’가 되며 그 후
            문이다. 따라서 예술은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보통 그     에 이어질 이야기는 언제나 관람객의 상상력으로 채워지도록 남겨진다. 기호
            작품을 죽여버리거나 아주 단순화시켜버린다. 좋은 작품은 여러 가지 의미를        와 관습은 물론 어떠한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는 이번 라이언 갠더의 개인전에
            담고 있는데 말이다. 물론 작품 하나 하나마다 개인적으로 그걸 만든 이유와       서 낡은 인식과 진부한 맥락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경험할 수 있
            세상에 이런 식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는 들어 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을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해석’을 돌려서 말하자면, 작업은 눈을 위한 시각적
            게 아니다. 단지 여러 가지 의미를 이끌어내기 위한 촉매일 뿐이다. 우리는 늘     예술이 아니라 뇌를 위한 인지적 예술이므로 ‘개념’이니 ‘인지’니 하는 것에 미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이렇게 해도 되는지, 다른 사람들이 흥미를 보       리 주눅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의 예술관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엘리트적
            이는지 신경 쓰며 산다. 갤러리에 들어온 사람들이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도 비      이어선 안 된다는 것. 반대로 ‘나쁜 예술’이란 주어진 예술, 똑같은 해석을 남
            슷하다. 어떤 것에 대해 독립적이고 주관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나름의 용       기는 예술임을 시사한다. 결국 ‘좋은 예술’이란 한 지점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기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익살스럽고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관람객을 응시하        수많은 종점에서 끝나는 여행과 흡사하다. 그 수많은 종점이란, 작품을 감상
            는 설치작품 『Magnus Opus(2013)』와 『Dominae Illud Opus Populare(2013)  하는 수많은 관람객을 말한다. 결국 예술이란 결코 붙잡을 수 없고, 고정할 수
            』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슬쩍 움직이기도 하고, 지루하다거나 궁       없는 것이기에 훨씬 더 스토리가 풍성한 여정을 가능하게 만든 다는 것. 최근
            금한 듯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작품을 보기 위해 간 미술관에서 거꾸로       들어와 ‘4차 코로나 감염 대유행’의 확산 세와 더불어, 날로 기승을 부리는 폭
            작품이 나를 바라보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는 셈이다. 관객을 관찰하고 응        염까지 더해져 도무지 이 기나긴 여정의 끝이 보이지 않는 판국이다. 만일 어
            시하며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작가의 시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갤러리를 방        떤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힌 미술인들이 여전히 진부한 고정 관념에 사로잡
            문하는 사람들이 단지 ‘관람객’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      혀 있다면, 아무쪼록 ‘새로운 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해석’에 대해서도 관용할
            들의 눈치를 보면서 이렇게 해도 되는지, 다른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는지 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창작으로의 여행이 속개되기를 진지하게 염원할 뿐이다.
            경 쓰며 산다. 갤러리에 들어온 사람들이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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