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전시가이드 2021년 08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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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통크스, <식염수 주사>, 1915년, 파스텔화, 67.9×52cm. 제국전쟁박물관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달 내에, 길어야 1년 이내에 전쟁이 끝날 줄 알았 참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화가이자 의사였기 때문이지요.
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4년 동안이나 지속되면서 사망자 수는 최대 2,500만 <식염수 주사Saline Infusion>에는 고통을 호소하며 식염수 주사를 맞고 있
명에 달했고 2,100만 명 이상의 군인이 부상을 당하는 최악의 전쟁이었지요. 는 환자가 있고, 그를 위해 손을 잡아 주며 치료하는 의료진을 빠른 손길의 파
존 래버리와 윌리엄 오펜 두 화가 모두 종군 화가여서 전쟁의 참상을 주로 그 스텔화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헨리통크스는 유명한 화가
렸지만, 그들의 차이를 만든 것은 그들의 신념 때문입니다. 존 래버리는 아일 이자 교수로 외과 의사였지요. 전쟁 중에는 군의관으로서 역사에 큰 기여를
랜드 독립을 뒤에서 몰래 후원하던 사람이었고, 오펜은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하게 됩니다.
영국인이 되고 싶어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이지요. 그러하기에 영국 영국 중부의 작은 마을 솔리헐Solihull에서 황동 주조공으로 일하던 아버지의
과 아일랜드에서 두 화가의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정치적 입 열한 자녀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난 통크스는 어린 시절에 몹시 가난했지요. 원
장은 반대였지만, 1931년 오펜의 장례식에는 래버리가 참석하여 같은 아일랜 래 건축 공부를 하려던 그의 계획은 집안을 일으키려는 아버지의 권유로 16세
드 출신의 거장으로서 도리를 다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아일랜드의 대표적 의 어린 나이에 의학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의학 공부를 위해 그는 먼저 브
인 화가 윌리엄 오펜과 존 래버리를 같이 기억한다면 아일랜드에 대해 이해하 라이튼의 왕립 서섹스 병원에서 의대생이 되었고, 1886년에는 런던 병원에서
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4년 동안 의사 과정을 마쳐 마침내
추함의 미학 의사가 되어 왕립외과학회Royal College of Surgeons의 연구원이 되었지요.
우리는 보통 미술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끔 기괴한 그림 그런데 그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도 프레드릭 브라운Frederick Brown이 가
이나 추한 그림을 보면 저런 것도 미술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르치던 웨스트민스터 예술학교Westminster School of Art의 야간반에 등록
우리들의 일반적인 시각으로 볼 때 사람 얼굴의 추한 면, 그것도 전쟁의 상처 하여 미술 공부를 병행하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예술학교에서 그의 재능을
로 인해 일그러지고 뭉개진 얼굴의 초상화를 본다면 외면하고 싶어질 것입니 알아 본 그의 스승인 브라운이 슬레이드 예술학교Slade Art School의 교장으
다. 그런데 이런 전쟁 부상병의 추하고 거북한 모습을 화폭에 담은 화가가 있 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통크스에게 예술학교 교수직을 제안하였고 통
습니다. 바로 지금 소개해 드릴 또 한명의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 종군 크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의사를 그만두고 미술 교수가 됩니다. 이때 그의
화가 헨리 통크스Henry Tonks(1862~1937)입니다. 제자가 된 화가가 윌리엄 오펜입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통크스는 종군 화가로 참전한 것이 아니고 군의관으로
이 코너는 칼럼니스트의 의도하는 바를 존중하며 경어체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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