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2019년09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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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덕 컬럼































        Everyday 60×30cm oil on canvas





         현대의 플로라(FlÕra)를 재탄생하는                          함해 여러 송이가 풍성하게 달리며 그 줄기는 가늘지만 단단하다. 리시안더스
                                                        는 어떤 꽃과 함께해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품위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
        서양화가 임 선 옥                                      다. 특히 화려한 꽃과 함께 디자인하면 더욱 돋보일 수 있게 도와주는 훌륭한
                                                        조연 역할을 한다. 세상의 수많은 모든 꽃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
                                                        지만 모두 다 주인공이라면 여러 꽃이 서로 상충하여 보기 좋은 꽃다발로 만
        김재덕(갤러리한 관장, 칼럼니스트)                             들어지지 않을 것 이다. 자연에 피어 있는 꽃들은 저마다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조화롭게 자신의 위치에서 더불어 아름다움을 공유한다.
        옛 설화에 ‘도라지’라 부르는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는데 이 처녀에게는 어려       홀로 있을 때보다 함께 있으며 자신을 낮추어 다른 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서부터 양가 부모가 결정해 놓은 약혼자가 있었다. 어느덧 성년이 되어 결혼       리시안더스의 의미는 각박한 현대 사회 속에 개인주의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
        할 나이가 되었으나 약혼자인 도령은 자신의 뜻을 키우기 위해 중국으로 수학       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修學)의 길을 떠났다. 처녀‘도라지’와 약혼자인 도령은 소싯적부터 서로 사랑
        하는 사이였기에 도령은 이 도라지 처녀에게 꼭 다시 돌아와 혼인을 할 테니       서양화가 임선옥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꽃과 풍요의 여신 플로라(FlÕra)의 향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길을 떠났으나 무슨 연유에선지 한해 두해가 지나        취가 캔버스 가득 배어나온다. 작가 임선옥은 수년간 리시안더스(prairie gen-
        도 도령은 다시 돌아올 기별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그 도령이 중국에서 혼인      tian / Lisianthus)의 향기를 그리고 있다. 모노톤의 단순한 색채는 경박하지
        을 하여 정착하였다거나 귀향길중 배가 침몰하여 사망 하였다는 등 확인 할 수      않은 깊은 의미로 대상의 내면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풍
        없는 소문만 무성했다. 도라지 처녀는 매일을 바닷가로 나가서 한없이 서쪽만       성한 꽃잎은 부드러움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워준다. 부드러운 질감과 형상의
        을 쳐다보며 도령의 귀향을 기원하는 것이 일이었다. 많은 세월이 흘러 어느덧      화려함을 머금은 채 창작행위 자체는 자연창조의 시초를 감상케 하고 태초 아
        처녀는 노인이 되었지만 바닷가로 나가 도령의 안녕을 기원하는 일은 목숨이        프로디테(Aphrodite)와 아도니스(Adonis)의 아네모네(Anemone)꽃의 신화
        다하는 때 까지 멈추질 않았다. 훗날 매일 나가 기원하던 그 자리에서 그녀가      를 상상케 한다. 임선옥 작가의 근작에 나타나는 미적 감성은 '변치 않는 사랑'
        죽어 꽃이 피어 도라지꽃이라 하였으며 그 꽃말은 ´영원한 사랑´, ´소망´으      을 넘어 풍요로움을 형상화 한다. 풍요로움은 우리의 감성 속에 항상 내재되
        로 불리게 되었다. 이 꽃말은 서양꽃 리시안더스(prairie gentian / Lisianthus)  는 희망이며 미래의 가치이다. 소재의 의미에서 기인하였는지 그녀의 캔버스
        의 꽃말로도 함께 쓰여 지고 있다.                             위의 붓 터치는 과장 되지 않고 절제된 마티에르를 가진다. 수채화처럼 투명
                                                        하고 간결한 터치를 사용하여 화면에 응집되어 군락을 이룬 꽃잎들은 여러 송
        리시안더스는 ‘영원한 사랑’, ‘변치 않는 사랑’과 함께 ‘풍요로움’, ‘화려함’을 함  이를 이루면서도 자신의 형상을 희생하여 각박함 없는 여백을 가지며 전체 구
        께 의미한다. 리시안더스는 장미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꽃으로 흡사        도를 조화로움으로 감상 할 수 있게 해 준다. 작가는 꽃의 본질에 대한 면밀한
        장미와 같아 보이나 모습이나 향기는 장미보다 연하고 은은하며 꽃잎은 더욱        관찰과 사실적인 묘사를 추구하며, 꽃의 아름다움을 직관적으로 대면 할 수
        풍성한 모양이다. 또한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답게 결혼식날 신부의 부      있도록 부드럽게 때로는 화려하게, 캔버스에 물성적 주관을 배제하고 회화가
        케나 사랑하는 연인에게 선물하는 꽃다발에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대중적으        가지는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 한다. 서양화와 한국화의 표현기법과 화면구성
        로 쉽게 접하고 많은 유통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래종인 관계로 국내에       의 적절한 혼용은 켄버스에서 이야기되는 표현의 다양성을 적절히 융합시켜
        잘 알려지지 않아 그 학명이나 정확한 꽃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늘     주며 소재의 특성에 따른 회화적 단점을 상호 보완해 준다. 화면을 가득 메우
        거리는 꽃잎은 겹과 홑의 2종류가 있지만 모두 단정한 모습이고, 봉오리를 포      는 꽃잎은 화면의 구성을 각박하게 할 수 있으나 한국화적 여백의 미를 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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