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2019년09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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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현 컬럼
(좌) 여인 시리즈 드로잉 제작중, 아내 엘렌과 함께 (우) 윌렘 드 쿠닝, 여인 II, 1952, ⓒADAGP
에스프리 누보 를 그렸는데, 그의 벽화가 주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전업 화가의 길을 걷기
로 결심한다. 또한, 마크 로스코 등 다른 추상화가들과 함께 《WPA(공공사업
새로운 정신 촉진국)》의 <연방미술계획> 업무에 종사했다. 연방미술계획은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화가들에게 공공건물의 벽화 제작 등을 위촉했던 곳이다. 호앙 미로
를 연상시키는 <초현실주의> 화풍을 구사하던 30년대를 지나, <큐비즘>을
글 : 김구현(AIAM 미술 경영연구소 대표) 탐구하거나 흑백의 추상 화면을 시도했던 40년대를 넘기면서1948년, 뉴욕 《
이건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1940년대 경부터 드 쿠닝은 인물 표
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1950년대 초반부터는 문제작이자 출세작인 『
여인』 시리즈에 당도한다. 추상 표현주의가 기승을 떨치던 당시 뉴욕화단에
2006년 9월 18일《모마 현대미술관》 특별 관이 한 거장에게 6층 전체를 할애 서 캔버스에 구상의 흔적을 넣는다는 것은 터부로 인식 되었다. 서로 존중하
한다. 이전에는 사례가 없었던 초유의 사건으로써, 타이틀은 바로『윌렘 드 쿠 는 동료 사이였던 잭슨 폴록이 제발 형상을 넣지 말라고 조언했을 정도다. 하
닝: 회고전』이었다. 한 전시에 대중의 반응이 이토록 뜨겁게 감지되는 건 특별 지만,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껏 그렇듯이, 캔버스 속의 무시무시한 여인은 곧
한 일이다. 거기에 냉혹한 뉴욕의 미술 평론가들 중에서도 저명한 이들의 찬 폭발할 듯 힘이 넘치고, 그 색채와 형상의 조화로움이 넘치게 아름답다. 사각
사가 더해졌다. 그만큼 이 전시 자체와 그 주인공의 브랜드 인지도는 가히 글 형 프레임 안에서 구현될 수 있는 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폴록의 물감을 뚝뚝
로벌 최상급으로 손색이 없었단다. 특히 『뉴요커』지의 고정 칼럼니스트 피터 떨어지는 <드립핑> 회화와 달리 드 쿠닝이 그린『여자』는 캔버스에 붓으로 그
센달은 드 쿠닝을 두고 "미국인 화가 중에서 가장 위대하며, 20세기 모든 예 린 것이지만, 감정이 향하는 대로 붓을 놀린 것처럼 보이는 화면은 거의 추상
술가 가운데 오직 피카소와 마티스에 견주어 볼 경우에만 약간 기울 뿐"이라 에 접근하고 있다. 그 후 화면에서 구체적인 이미지를 배제한 추상적인 작품
고 평했을 정도다. 을 그렸던 시기도 있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다시『여자』를 테마로 작품을 만
들어 냈다. 드 쿠닝은 85 세에 알츠하이머 병이라고 진단을 받았지만, 사실은
윌렘 드 쿠닝은 1904년 네덜란드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사춘기에는 상업미 70 대 초반부터 기억력에 문제를 보이기 시작하고, 때로는 갑자기 감정을 조
술 회사에서 일하는 하면서, 로테르담 미술공업학교의 야학으로 공부했다. 네 절하지 못하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덜란드에 있었던 시기에 몬드리안 등의 <더 스테일> 운동을 접했다. 22 살 때
에 화물선에 무임 승차하여 밀항하여 불법 이민자로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그가 기억력에 문제를 보이기 시작한 70 대 이후 그의 화풍이 아주 달라졌다.
미국에서 활동한다. 1927년경 아르메니아 출신의 화가 아실 고치와 알게 되 스타일은 점점 더 자유분방해지고 색은 대담해지고 표현은 더 과감해졌다. 나
어 많은 영향을 받았다. 드쿠닝은1930년대 중반까지 상업 미술 작품으로 생 이가 들어서 그린 그림의 붓 자국은 마치 춤을 추듯 생동감을 나타낸다. 일부
계를 유지했다. 그러면서, 뉴욕의 미술계에 발을 딛는다. 당시는 경제 공황 시 평론가는 젊어서 그린 그림과 너무 스타일이 달라서 “더 이상 드 쿠닝이 아니
대여서 넘쳐나는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공공 사업을 일으켰는 다”라고 할 만큼 자유분방해진 그림은 새롭게 주목과 재평가를 받았다. 일반
데, 예술가들을 뉴욕 시가 주관한 도시 개발 사업과 세계 박람회 사업의 일환 적으로 치매에 걸리면 ‘기억력’과 ‘언어 능력’이 감퇴되며 ‘예술적 능력’도 달라
으로 건물 벽화 그리기에 고용했다. 드 쿠닝도 다른 화가들과 함께 이런 벽화 진다고 한다. 치매에 걸린 다음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 달라지는 화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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