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2019년09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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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초대


                                                                                   작가의 작업실 한 켠에 사열하
                                                                                   듯 서 있는 작품들이 저마다 다
                                                                                   른 의미로 만족스러움과 부끄
                                                                                   러움으로 교차하며 지나간 시
                                                                                   간들과 함께 다가온다. 많은 날
                                                                                   들을 하얀 캔버스 앞에 서서 부
                                                                                   딪치고 넘어졌던 시간들을 생
                                                                                   각하며 오만함은 아니지만 작
                                                                                   업실 밖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의 표정들에서 잠깐의 위안을
                                                                                   가져본다. 그런 일상적 삶이 무
                                                                                   료하게 느껴지고 작가의 개인
                                                                                   전 작업을 위해 치열하게 보내
                                                                                   왔던 시간들은 이후 전개될 작
                                                                                   품들과 함께 무수히 열리고 닫
                                                                                   힌다. 작가에게 예술이란 그 자
                                                                                   신의 혼을 불사르며 미지의 세
                                                                                   계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작업의 시간을 끝없는
                                                                                   사막에서 홀로 헤매다가 오아
                                                                                   시스를 만나기도 하고 때론 사
                                                                                   막에 갇혀 수많은 입구에서 나
                                                                                   의 문을 찾고자 노력하는 시간
                                                                                   에 비유한다.
                                                                                   작가의 자연에 대한 인식은 조
                                                                                   화(harmony)이다. 나무, 새, 꽃
                                                                                   그리고 사람들이 부유(浮遊)하
                                                                                   다 가장 편안한 공간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 본래의 모습
                                                                                   을 일상적인 삶속에서 찾아내
                                                                                   기 위해 동심의 눈으로 현실에
                                                                                   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거
                                                                                   나, 추억 속에 침잠해 있는 내
                                                                                   밀한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 심
                                                                                   안(心眼)의 조리개를 밀었다가
                                                                                   당겨 보기도 한다. 흐리거나 선
                                                                                   명한 기억들을 채집하여 그런
                                                                                   결과들을 미지의 캔버스에 색
                                                                                   과 구도를 부여하고 나면 비로
                                                                                   소 작품은 하나하나 생명을 가
        정원-하모니, 65.1×53.0cm, Oil on canvas, 2018                                   지고 태어난다. 작품은 깨어나
                                                                                   작가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그
                                                        의 인생에 방향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얻어진 순수함과 깨끗함과 편안함이
                                                        작가의 미학(美學)이다. 작품을 바라보며 이런 상상을 하게 된다. 수십 년 전
                                                        작가가 이 작품들에 들였을 노동(육체의 행위)과 시간(작품에 깃든 역사성)을
                                                        곰곰이 응시하게 한다.

                                                        나는 그림을 통해 삶을 찾아내며 그림으로 응변한다. 바라건대 내 그림이 보는
          여름향기, 숲을 걸으며 사색하는 남자                          이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고, 잠자고 있는 감수성을 일깨우는 파도가 되어 주
                                                        길 바란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얻기 바란다. 설령 지금은 나의 노력이
         이존립 작가                                         무위로 끝날지라도 나는 예술의 끝없는 생명력을 믿고, 오염되어버린 自然과
                                                        대립된 인간관계를 여과하여 화면에 담아내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현실을
                                                        뛰어넘어 환상적 세계까지 조종할 수 있는 생각의 유연성이 나의 예술세계에
         글 : 양지원(서경대학교, 문화예술학 박사)                       서 극복하고 발전시켜야 할 과제이며 임무라 믿으면서 다시 작업을 시작할 것
                                                        이다. -이존립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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