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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은칼럼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Louise Bourgeois. Ode à l’oubli. 2002. Fabric
illustrated book with 35 compositions: 32 fabric
collages, 2 with ink additions, and 3 lithographs
© The Easton Foundation/VAGA at (ARS), NY.
(including cover), page (each approx.): 11 3/4 x 13”
(29.8 x 33 cm)© 2013 Louise Bourgeois Trust Photo: Maximilian Geuter.
식지 않는 예술 혼, 남성성을 이긴 어머니란 존재에 대한 경외감이 나타난다. 사실 루이스 부르주
나는 여자이고, 여자의 아는 늦은 40대의 나이로 당당하게 예술계에 입성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이다. 이 후 파격적이던 그녀의 작품은 점점 모성애와 사람과의 관계의
이해로 변했다. 복수심과 증오로 가득 찼던 소녀는 어머니가 되고 작가가 되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 면서, 존재의 나약함은 힘이 없는 나약함이라기보다 섬세한 여성의 마음과 몸
으로서, 가녀리고 부서질 것 같은 여성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한 엄마의 마
음으로 그녀의 작품에 담았다.
김세은(강남대학교 미술문화복지 교수)
“나는 다만, 아는 것에 관해서만 얘기할 뿐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없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조각가이자 추상적 이미지로, 신체의 이다. 그렇다고 ‘여성’들을 위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늘 ‘나 자신’
부분이나 성적인 이미지를 에로틱한 형상으로 거대한 입체작업부터 작은 손 에 관해 이야기한다.”
바느질한 천 조각 등 다양한 재료의 작업으로 대표적인 페미니즘 예술가이다.
1911년 파리에서 태어나 대대로 양탄자 수선 사업을 해 온 집안에서 자라 온 루이스 부르주아는 평생 동안 드로잉에서부터 천 조각에 석판화를 찍는 작업,
그녀는 8살 때부터 양탄자 도안을 그렸다. 하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불륜은 수건으로 만든 작품, 손바느질한 천 조각 등 장르와 재료를 넘나드는 다양한
부르주아에게 커다란 정신적인 충격과 상처를 주었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작업을 통해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는 일관된 목소리를 담았다. 그녀는 드로
어머니에 대한 연민은 부르주아 예술의 지속적인 원동력이자 모태가 된다. 가 잉을 불현듯 떠오르는 창작의 영감을 마치 파리나 나비 같이 잡아채어 종이
부장적인 아버지는 그녀의 예술가 길을 천박한 직업이라고 비난하였고, 아버 에 옮겨 놓는 ‘생각의 깃털’이라 했다. 한편 드로잉은 그녀의 트라우마를 위로
지를 향한 증오와 상처는 그녀를 파격적이고 강렬한 힘을 가진 예술가로 성장 하고 치료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그녀의 드로잉 중 어떤 것은 조각으로 연결
시켰다. 부모님의 무너진 신뢰관계 속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관계’에 대한 그 되어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기존의 양식이나 사조로는 설명할 수 없이 독창
녀의 깊이 있는 사고는 작품 속에서 섬세하고 강하게 존재한다. 적이고 개성적이다. 1982년 루이스 부루주아는 뉴욕, 근현대미술관(MoMA)
에서 여성 작가로서는 처음 회고전을 열었고,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루이스 부르주아도 처음부터 예술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다. 자전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한 그녀의 작품 세계는
터 정신적 불안감을 느꼈던 부르주아는 확실한 답이 있고, 예측 가능하며 안 내용과 형식의 파격을 보여주면서 현재도 활동하는 다양한 미술가들에게 영
정된 수학체계에 끌려 대학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했으나, 바로 수학적 관 향을 주고 있다. 인간으로서, 특히 여성이 얼마나 깨지기 쉽고 외로운 존재인
념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이론적 구조일 뿐임을 깨달은 후, 미술로 대학을 지 예시하지만, 동시에 치유의 손길이 느껴진다.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재 진학하였다. 파리근교의 화가들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배우던 중, 페르낭 독특한 예술세계를 통해 인간의 상처를 끌어안는 그녀의 작품이 더욱 감동적
드 레제(Fernand Leger)와의 만남은 그녀의 작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에게서 입체에 대한 독특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녀를 격려하
였고, 이를 계기로 평면적 작업을 주로 하던 그녀는 기하학적인 조각을 시작 긴 시간이 느껴지는 주름살에 검버섯이 피어오른 얼굴로 “내게 작품은 신체
한다. 그녀의 초창기 작품들은 공격적이고 파격적이며, 폭력적으로 보이기까 다. 내 몸이 곧 내 조각이다” 라고 말하던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지 하는 과감한 표현으로서, 아버지로 인해 받은 상처와, 불신의 감정, 그리고 의 예술을 향한 열정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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