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전시가이드 2021년 11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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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여행_해가 지기 전에#2, 91×116cm, 캔버스에 아크릴컬러, 2021  자기만의 여행_동이 트기 전에#4, 90×65cm, 캔버스에 아크릴컬러, 2021



            자 하는 여행의 길이고 그림은 곧 우리 삶의 나침반이 된다. 작가의 그림은 한     상상을 하는 것이다. “내가 나비가 된다면, 내가 작품 속의 소녀가 된다면?” 작
            편의 아름다운 시와 같다. 그래서 명명된 <자기만의 여행>은 홀로 어딘가를       가에게 상상하는 시간은 그림과 조우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향해 떠나는 여성의 자기독백적 풍경화의 형식을 취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소
            녀의 이미지는 어쩌면 우리의 과거이거나 어딘가에서 만났던 마음 따뜻한 감        인식의 확장, 언젠가 함께할 나의 미래
            성의 의인화일지 모른다. 시공간을 초월해 상상과 희망의 모티브를 새겨주는        이번 전시에서 발표하는 신작 <안식처 시리즈>는 인물이 배제된 풍경들과 어
            안소영의 작품구성은 크게 3부작으로 구성된다. <자기만의 여행>은 소녀가        디선가 봤음직한 확대된 인물들이 대비되듯 그려진다. 그림의 사이즈가 2배
            있는 풍경의 모티브를, <내가 너에게 갈게>는 소녀의 바람이 담긴 확장적 시      가까이 커지면서 주인공은 자연에서 인물로 전환되었다. 영화의 와이드 샷과
            각을, 소녀의 시선을 담은 <응시>는 여행에서 깨달음을 얻은 소녀의 미래를       같은 잔상들을 보여준 이유 역시 누구나 동화될 수 있는 작품을 그리기 위해
            담은 듯 하다. 작가는 여행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투영한다. 늘 즐거울 수     서다. 소녀가 손에 쥔 대상들도 책·휴대폰·전등처럼 방향을 지시하는 여행도
            없는 여행의 고단함과 슬픔, 그리움 등을 여행 3부작을 통해 구현해낸 것이다.     구들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작가는 제목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다양한 상징
                                                            코드를 숨겨 둔다. <자기만의 여행> 뒤의 #4 #9같은 숫자들은 계절 혹은 달
            자연과 만난 세계, 희망으로 가는 길                            을 상징한다. 한 여성이 우연히 떠난 1년간의 여행은 ‘겨울-봄-여름-가을-겨
            안소영의 그림에는 별과 달, 나무와 같은 자연이 등장한다. 인간의 시간보다       울’(컴백홈)로 돌아오는 자전적 스토리텔링과 같다. <동이트기 전에>는 자작
            긴 세월을 살아낸 대상들과 조우함으로써 ‘현재 나의 좌표’를 그려내기 위함       나무 사이를 걷는 겨울의 여성이 등장한다. 화면 밖을 바라보는 여성의 응시는
            이다. 자연의 피조물로 인간이 들어갔을 때 자유를 느낀다는 작가는 경쟁적인       이상향 혹은 동이 트는 느낌 등, 긍정적인 세상을 보는 가능성의 힘을 담았다.
            도시의 삶보다 오랜 시간 견뎌낸 자연의 삶이 더 많은 희망을 보여준다고 말       이전 작품이 풍경을 중심으로 그렸다면, 이번 전시는 작품의 시선과 관람객이
            한다. 먼지처럼 부유(浮遊)해도 요구하지 않는 편안함은 오랜 시간을 견뎌낸       조우하는 순환적 느낌을 ‘내가 너를 보고, 내 자신이 작품의 속의 나이기를’ 바
            나무의 시간과 닿아 있다. 자연이 둥지가 된 풍경은 그래서 여백을 강조한다.      라는 응시의 시선을 담는다. <내가 너에게 갈게>(의자그림)는 내가 나 자신에
            자작나무로 환원된 <응시 시리즈> 속에는 소녀가 자연을 관조하는 프레임이        게 가는 과정을 담는다. 처음에는 나에게 집중한 시간이었지만, 그림을 그리
            등장한다. 밤 속의 낮과 밤 속의 석양이 공존하는 그림에서는 현재를 만족하지      는 욕구가 해소된 이후 어느 누군가를 위한 자리를 그리고 싶다는 느낌 때문
            못하고 과거를 추억하는 우리의 현실과 만날 수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꿈과      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와 <동이트기 전에>는 한겨울의 석양과 노을을 보
            현실의 이중변주 속에서 아픔을 이겨내고 현실을 가치 있게 의미 짓는 가운데       며 새로운 희망을 다짐하는 시간을 담았다. 그리고 싶다는 의지, 안소영의 그
            살아낸 자연과 같은 존재라는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실제 자작나무를 보노라       림 안에는 바람이 분다. 마치 자연이 인격같이 느껴지는 그림들은 힘들 때 숨
            면 세로로 연결된 레이어들이 다른 세계(가상과 꿈)와 만나는 경험들을 보여       결을 불어넣어주는 치유(힐링)의 바람과 같다. 안소영 작가의 다음 여행지는
            주는데, 매트릭스나 인셉션 같은 영화 속 스토리들처럼 작가는 이상향의 세계       언젠가 함께할 스스로의 미래가 아닐까. 누군가와의 관계성으로 나아가는 과
            로 통하는 하나의 문을 그려내고 있는지 모른다. 또 하나의 상징코드는 바로 ‘     정, 그래서 우리는 작가의 다음 여행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나비’이다. 정글같은 현실에 던져진 오늘의 불안을 피하는 방식은 그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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