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2019년02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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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권 컬럼
호력도, 80×35cm, 장지, 조선민화박물관 소장
1990년대 들어와 전통 민화 기법을 익힌 작가들이 많아졌고,
이에 우리 미술화단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했으며
무엇보다도 타 분야의 미술작가와 차별되는 보다 확실한 민화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공방소속 을 하였다.
1995년에는 ‘한국민화연우회’가 보다 큰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한국민화작가
민화작가들의 활동 회’로 명칭을 달리하여 재창립되었다. 참여 민화작가들은 평균 20년 이상의
경력자들로, 송규태를 고문으로 모시고, 안영혜, 서경식, 이택용, 금광복, 김
상철, 박수학, 이정동, 윤인수, 박신자, 박근자, 이현영, 강대봉, 임정명, 이형기,
김용권(겸재정선미술관 관장) 박영일, 이나미, 홍혜숙, 권오규, 김홍자, 이문성, 서공임, (고)안종혁 등이 참여
해 더욱 눈부신 활동을 보여 주었다.
한편 1990년대 들어와 전통 민화 기법을 익힌 작가들이 많아졌고, 이에 우리
1986년에는 앞선 지면에서 언급되었던 이규완, 박수학, 정하정, 나정태 등에 미술화단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했으며 무엇보다
의해 배출된 제자들이 ‘한국민화연우회’를 구성하여 활동하였다. 사실 오늘날 도 타 분야의 미술작가와 차별되는 보다 확실한 민화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
의 민화분야의 부흥은 바로 위와 같은 ‘한국민화연우회’가 큰 바탕이 되었다 다. 당시에는 평생교육원, 문화강좌 등을 통해 고학력의 중, 상류계층의 주부
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짚고 넘어가게 되는데, ‘한국민화연우회’ 들이 여기적, 전문적으로 민화작품을 제작, 발표하였다. 그리하여 민화 동호
창립에는 김상철, 이정동, 윤인수, 구연경, 이문성, 서공임, 강대봉, 고광준, 정 회에서부터 아마추어작가로 그리고 민화전문가로 성장하면서 민화 인구가
복석(가나다 순) 등의 민화작가들이 참여하였다. 물론 당시에는 다른 경로로 양적으로 대폭 늘어났다. 이와 함께 서양화, 한국화, 도자기, 디자인 분야 전
민화발전에 공헌한 작가들도 있었다. 공자들이 민화 작가로 눈에 뛰게 활동하였다. 이른바 당시에는 정규대학 과
김생수, 박근자, 이형기, 이정옥, (고)안종혁, 엄재권, 정승희, 최덕례(가나다 정을 거친 타 분야의 몇몇 작가들이 민화작가로 활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순) 등의 민화작가들도 눈에 뛰는 활동을 보여 주었다. 이들 모두는 자타가 동안 민화분야에 경직된 반응을 보여 왔던 미술대학 몇몇의 교수들까지도 민
인정하는 오늘날의 민화부흥의 일등공신으로, 민화작품 활동과 민화단체 활 화작가로 활동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민화분야는 양적, 질적으로 많은 성장
동 그리고 제자 양성에 힘을 써, 민화 저변 확대와 위상을 높이는데 큰 공헌 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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