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2019년05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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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cm  color ink on Korean paper  2019    20.0×60.1cm  color ink on Korean paper  2019


            바로 점묘법(點描法, pointillism)이다. 그렇다면 동양의 점법과 서양의 점묘  음으로써 생명이 시작된다. 결국 흙의 먼지, 즉 흙의 점은 사람이 되어 숨 쉰
            법은 어떤 차이가 있기에 그 변화가 중요한가? 동양의 점법이 표현 대상의 묘      다. 칸딘스키가 말한 ‘죽어있는’ 점이 ‘살아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생
            사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점을 찍는 방식이라면, 서양의 점묘법은 대기에        명은 일평생 쉬지 않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살아야 한다. 평생을 반복하
            떠도는 미세한 빛입자를 찍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점묘법은 빛     는 호흡 속에서 작가는 ‘반복이 결국 삶’이라는 깨달음까지 얻게 된다. 또한, 자
            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분해되는 색상을 고려하여 색점들을 병치하는 묘법         신의 내면에 들어왔던 들숨이 자신의 몸에 잠시 머물다 날숨으로 세상에 나
            이다. 그래서 점묘법은 대상의 형태를 그리기 위해서 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가, 자연의 숨이 되고, 이웃의 숨이 되고, 타인의 숨이 되는 것을 떠올린다. 더
            빛에 의해 드러난 대상의 색상을 표현하기 위해 점을 찍는다. 점묘법 그림이       불어 자신이 내뱉은 과거의 날숨이, 언젠간 자신이 들이마실 미래의 들숨으로
            마치 망울망울 떠다니는 색색의 빛입자들로 화면이 채워진 것처럼 보이는 것        다시 되돌아올, 그 숨의 순환성을 떠올린다. 점은 그렇게 숨과 삶과 반복으로
            도 이 때문이다. 동양의 점법에서 서양의 점묘법으로 변한 이영숙의 작업은        깊은 사유의 세계로 작가를 끌어들였다. 이렇게 확장된 점의 상징성은 마침내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점을 찍는 기존의 방식에서, 빛의 색입자를 표현하기        씨앗 모양으로도 보이는, 어쩌면 불씨를 의미할 수도 있는 촛불이 되어 우리
            위해 점을 찍는 새로운 방식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여러 동양화    앞에 도착한다. 이것은 이영숙이 빛나는 무수한 점들을 상상하면서 그려낸 점
            점법 중 그 대상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점법을 찾아 찍을 필요가 없어졌으며,      의 형상이다. 개연성 있는 추측을 해본다. ‘점묘법의 빛입자가 빛나는 점들을
            빛으로 충만한 대기에 균일하게 존재하는 색상의 빛입자(빛점)들을 표현하면        떠오르게 했으리라.’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작가가 빛나는 점을 상상하는 것
            되기 때문에 유사한 모양의 점들로 화면이 채워지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은 이와는 다른 차원이다. 작가가 상상하는 빛나는 무수한 점들은 단순히 빛
                                                            의 입자가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빛나는 점
            반복과 차이                                          을 연결시키며,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 하늘의 빛나는 별이 된다는 낭만적
            이러한 변화는 최근의 <숨-안녕> 연작의 추상 작업으로 이어진다. 기본기에       인 별(점)에 관한 서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의 뇌리에 남아 있
            충실했던 시기의 점찍기는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행위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는 빛나는 무수한 점들은 2016년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웠던 촛불들이다. 그
            서양의 점묘법으로 변한 이후 ‘반복을 위한 반복’에 가까워졌다. 작가는 어느      광장에 모였던 한 명 한 명의 마음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이제 점은 단순
            순간 이 반복에서 일평생 잠시도 쉬지 않는/쉴 수 없는 ‘호흡’을 떠올린다. 그    한 점이 아니고, 점의 반복도 단순한 반복이 아니게 된다. 점이 전혀 다른 차
            렇다면 이 숨은 누가 불어넣어 준 것인가?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      원의 개념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이제 작가의 ‘반복을 위한 반복’은 그저 단순
            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     한 기계적인 반복의 차원이 아닌, 그 차원을 넘어선 곳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세기 2,7) 흙의 먼지, 흙의 점들은 사람이 되고, 하느님이 생명의 숨을 불어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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