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4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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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修義副尉 三陟金公 望祭碑銘






                故修羲副尉金公涓館이于今四百餘年矣라痛其文獻之無徵하여日에其裔孫炯斗世烈이訪余齋
              居하여拜且言日吾十四代祖修羲副尉公之配位與生卒墓所가俱無譜乘之所載則其衣履之攸藏과
              體魄之安否를於何憑恃리요懼其愈久而愈失其傳也하여將欲竪石於北三面龜尾山하고歲一望祭

              하여以遂追遠之誠하니盍爲誌之리요余謝非其人而請益懇하고涕述嗚咽不成聲하니苟非誠孝之
              由中이면其能如是乎아不擇於當世主文而必於海山窮交者는遵世契也라余亦惑其孝思之匱하여
              謹撮其狀而叙日公의諱는仁이요姓은金이니三陟人也라以新羅敬順王孫三韓壁上功臣悉直郡王
              諱渭翁으로爲鼻祖하여諱自英은陪隆校尉요諱洗은宣節校尉요諱僕永은監司요諱正位는府使니

              即公之五代祖也라高祖의諱는台柱니大司諫이요曾祖의諱는仲允이니中郎將이요祖의諱는志涕
              니務功郞이요考의諱는正暉니都統使大將軍이요妣는貞夫人懷德宋氏라生四男하니公其四男也
              라五傳而日重蘭은贈吏曹參判이라生四男하니長은彥立이니通政司僕寺正이요次는麟立連立賢
              立이라中外來玄이總七百三十餘人이니振振盛哉라秉諧生於公四百餘年之後하여凡公清德懿行

              을其何能論撰一二하여飭幼昧而詔來後耶아恃以欽慕之深하고用副考泣懇之至意하여乃於狀而
              叙之하고系之以銘日  公名在世나公墳無徵이라一片貞琅에記蹟何能고山夷亥枯에德音不崩이
              라歲一望裡에感慕采增이라



                辛酉二月 日 溟州金秉諸는撰하노라




                수의부위(修義副尉)  삼척김공(三陟金公)  망제비명(望祭碑銘)



                  고(故)  수의부위(修義副尉)  김공(金公)께서  돌아가신  지  지금  四백여  년이  되었는데
                징험할  만한  문헌이  없는  것이  통탄스러웠다.  하루는  그  후손  형두(炯斗)(一八六七〜
                一九三五)와  세열(世列)(一八六七〜一九三三)이  나의  집을  찾아와  절을  올리며  말하기
                를‘우리  십사대조  수의부위공의  배위(配位)와  생졸  묘소가  모두  보첩에  실리지  않았
                으니  그  묘소와  체백(體魄)의  안부를  어디에서  징험  하겠는가?  오래되면  오랠수록  더

                실전(失傳)될까  두려워서  장차  북삼면(北三面)  구미산(龜尾山)에  비석을  세워  한  해에
                한 번 제사를 지내 추원감모(追遠感慕)하는 정성을 이루려고 하니 비문을 지어 주십시
                오’라고 하였다.  내가  비문을 지을  사람이  아니라고  사양하자  더욱  간절히  청하면서

                오열(嗚咽)하며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니  참으로  지극한  성효(誠孝)에서  우러나온  바
                가 아니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가 당대의 문장가를 찾아 부탁하지 않고 나같이
                시골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은  세교(世交)가  있기  때문이어서  나  역시  그  효성에  감격
                해 삼가 그 행장(行狀)을 참고해 다음과 같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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