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7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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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하여 신흥(新興) 선산 아래로 터를 정해 사당을 세워 해마다 원종공신, 보조공신,
호성공신 세 공신 선조를 제사하는 일을 청읍(靑邑)사람들과 의논했더니 그들이 말하
기를 본현(本縣)뿐만 아니라 유림 전체의 책임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다 같이 협조하
여 사당을 지어 신주를 모시니 일의 두서가 잡혀졌다. 마땅히 한 조각의 기문(記文)이
있어야 하니 당신이 지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내가 옷깃을 여미고 공손을 표하고는
말하기를‘임금의 난리에 나아가는 것은 충(忠)이요 나라 일에 죽은 것은 의(義)이니
이밖에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더욱 대대로의 아름다움을 추앙할 뿐이다. 내가 비록
매우 잔약하나 인륜은 다 같은바 여서 글을 잘못 한다고 해서 굳게 사양하겠는가?’
행장을 살펴 요약하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김씨들은 그 유래가 먼데 三十七세에 신라왕이 나라를 전했네. 실직군왕이 처음으로
삼척을 본관으로 삼았네. 고려 때 현달하였고 조선에서는 봉렬대부가 공신이 되고 四
대를 내려와 진릉군(眞陵君)이 적을 토벌하다 전사했네. 천리 먼 의주(義州)에 어가가
파천할 때 진성군(眞城君)이 호종해 힘껏 모셨네. 대대로 아름다움 전하고 아름다운
덕 빛나네. 맑은 의논 사라지지 않아 합쳐서 제사 올리니 조야(朝野)의 보답 매우 높
다고 하겠네. 세 충신이 한 사당에 계시니 높고 영원히 전하리라.
임술년(一九二二) 초추(初秋)에 서원(西原) 한서교(韓序敎)는 삼가 지음.
제5편 선조 행장·갈명기(先祖 行狀·碣銘記) 3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