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6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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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將仕郞 訓錬院部將 金公 墓碣銘






                我金之望三陟은冑干新羅悉直郡王諱渭翁으로至麗季彰信校尉諱光裕為中祖요入李朝에簪組
              相襲이라有諱仲淳하니上將軍이요中廟朝에有諱蘭孫이니秉節校尉요諱良輔는以扈聖功臣으로
              封陟州君하니富府君之三世而妣는貞敬夫人江陵劉氏니文僖公之后라中廟癸酉에生諱熙하니字

              는元明이요號云晩逸이라禀性이穎悟하여自幼로能釋文義하고及長에乃登武第하여為將仕郞訓
              錄院部將하고又以鎭東政職으로補位於鏡城이러가未久에棄官還鄕하여遂絶意於進取하고躬修
              行義하여只施于身家하고孝事二親하여承順無違하고丁外內艱에遵禮無憾하고與弟로盡于友樂
              하고待族黨交鄉隣에克備道理하니遠近人士一爲容接者感化焉이라宣廟壬午에卒하니享年이七

              十이라墓北三面智興里萬崇洞負庚原이라配端人江陵金氏니箕子殿參奉彥孫의女라擧六男하니
              曰皐는將仕郎參奉이요曰稷은通政이요曰契은嘉善同樞요曰垂는將仕郞이니出系李父烈后하고
              曰夷는展力副尉요曰嗣元은子孫이居鏡城이라孫曾以下는蕃不盡錄이라嗚呼라以府君之愷弟로
              素所蓄積이足可爲需世大用而只止於邊鎭之任하니爲裔者豈不慨恨歟아前世瑕刻이苔泐字泯이

              라炯轍이不勝感懼하여謀于諸宗遂伐石而再竪하여俾圖昭示於無窮焉이라.
                      西紀 二九四六年丙戌十一 月 曰十三世孫炯轍은謹撰
                謹因嗣孫炯轍之請으로銘其十三代祖將仕郎之阡曰萬崇之麓은君子攸藏이라原於孝友에百行
              允臧이라責重間外요威制邊疆이라功成名遂에退老巖廂이라懿謀攸遠에世貽有光이라卓行不泯

              에昭揭石章이라
                      江陵成鍾浩는銘 眞珠沈之涅은書幷篆





                장사랑(將仕郞)  훈련원부장(訓錬院部將)  김공(金公)  묘갈명


                  삼척의 망족(望族)인 우리 김씨는 신라  실직군왕  휘  위옹(渭翁)을  시조로 하며 고려
                말엽에 이르러 창신교위 휘  광유(光裕)를  중조(中祖)로  하여  조선에  들어와  높은  벼슬
                이 대대로 이어졌다. 휘 중순(仲淳)은 상장군이요 중종 때 휘 난손(蘭孫)은 병절교위요
                휘 양보(良輔)는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척주군(陟州君)에  봉해졌으니  이분이  실로  부

                군(府君)의  三세이며  어머니  정경부인(貞敬夫人)  강릉유씨(江陵劉氏)는  문희공(文僖公)
                의 후손이다. 중종 계유년에 휘 희(熙)를 낳으니  자는 원명(元明)이요  호는 만일(晩逸)
                이다.  품성이  영리하여  어려서부터  글의  뜻을  이해하고  자라서는  무과에  급제하여  장

                사랑 훈련원부장이 되었고 또 진동정직(鎭東政職)으로 경성(鏡城)에 보직되었는데 얼마
                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침내 벼슬하려는  뜻을  끊고  몸소 수양하여  의를
                행하면서  어버이를  효성으로  모셔  조금도  뜻을  어김이  없었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예
                법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마쳤으며 동생과  우애하고  일가들 및  이웃 사람들과  도리
                를 다해 사귀니 원근의 선비들이 모두 감화되었다. 선조 임오년에 돌아가시니 향년 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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