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1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P. 411
32. 務攻郎 三陟金公 祭壇碑文
三秒之北料科之原게負酉而築之者는務功郎金公諱世賢安人燕岐魏氏之祭壇也라穆陵龍蛇之
亂에失其幽宅하고廣探窮搜者累世而未獲秦利之兆則就其先瑩下하여設壇歲享을一如上塚儀者
亦矣而尚無實記하여後孫世榮球鎬가徵余文이어널按三陟氏는系出羅室이라敬順王第八男曰錘
니是生曰渭翁은封悉直郡王이라三傳曰僕永은監司요自是再傳曰台柱니大司諫이요自是四傳曰
偕니户部咼書라皆顯于麗朝라高祖는頊이니衛尉尹이요曾祖는光裕니備巡衛요祖는承孝니司直
이요考는終淳이니副尉요配는安人燕岐魏氏니愼庚之女라擧三男하니長曰瑾이요仲曰噹이니皆
副尉요季曰璨이라噫라爲人子孫이寓慕其父祖者는廟與墓而己라廟則五世而桃하고惟墓可以傳
之無窮而失其兆域하고灑掃莫及하니其所痛恨이當何如也리요壇而享之는雖不見於經이나實合
於天理人情하니可謂無於禮之禮也라世級이曰降에人心이不淑하여雖近代之墓라도置相忘이온
况還代乎아於是乎斧堂이頹怔하여香火不繼者를徃徃見之나今見金氏之門에盡其追遠之誠者若
是하니足以爲衰世之模範也故로力疾讹毫而寒請云이라
歲戊子小春下浣에通政大夫前秘書院丞安東金甯漢은記하노라
무공랑(務攻郎) 삼척김공(三陟金公) 제단비문(祭壇碑文)
삼척 북쪽 요과(料科) 언덕 유좌(酉坐)에 쌓은 단은 무공랑 김공 휘 세현(世賢)과 안
인(安人) 연기위씨(燕岐魏氏)의 제단(祭壇)이다. 선조(宣祖) 임진년의 왜란에 그 무덤을
잃어버리고 여러 세대를 걸쳐 널리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선영 아래에다 단을 설
치하여 一년에 한 번씩 제사를 올리는 것을 무덤에서 하는 예와 같게 했는데 아직 기
문(記文)이 없어 후손 세영(世榮)(一九O三〜一九七八)과 구호(球鎬)(一九一一〜 一九七
O)가 나에게 기문을 지어달라고 청한다.
살피건대 삼척김씨는 신라에서 나와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 추(錘)가 아들 위옹을 낳
아 실직군왕(悉直郡王)에 봉해졌다. 三대를 전하여 복영(僕永)은 감사요 이때부터 다시
내려와 자주(自柱)는 대사간이요 四대를 전하여 해(偕)는 호부상서인데 모두 고려 때
현달하였다. 고조 관(琯)은 위위윤(衛尉尹)이요 증조 광유(光裕)는 비순위(備巡衛)요 할
아버지 승효(承孝)는 사직(司直)이요 아버지 종순(終淳) 부위(副尉)요 배(配)는 안인(安
人) 연기위씨(燕岐魏氏)는 신경(愼庚)의 딸이다. 아들 셋을 두었으니 장남 근(瑾)과 가
운데 당(璫)은 모두 부위요 막내는 영이다.
아, 자손들이 조상을 추모하는 것은 사당과 무덤뿐인데 사당은 五세가 되면 끝나니
오직 묘만이 무궁하게 전하지만 실전(失傳)을 하고 나면 성묘를 하지 못하므로 그 통
제5편 선조 행장·갈명기(先祖 行狀·碣銘記) 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