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4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P. 414

공의  휘는  득강(得綱)이요  자는  차공(次公)  호는  퇴당(退堂)이다.  삼척김씨는  고려

                실직군왕(悉直郡王)  위옹(渭翁)을  시조로  하여  중랑장(中郎將)  광유(光裕)는  홍건적(紅
                巾賊)을  토벌한  공으로  책훈되고  나라가  망하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숨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동래부사(東萊府使)  양필(良弼)이  삼포왜란(三浦倭亂)을  토평하니
                이분이 공의 四세조이다. 증조 훈(勳)은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으로 연산군 때여서 벼

                슬하지  않았으며  할아버지  긍(兢)은  호군(護軍)이요  아버지  천을(天乙)은  충순위(忠順
                衛)이며 남양홍씨 첨추(僉樞) 광(礦)이 외할아버지이다.

                  공이 선조(宣祖) 갑오년에 출생하였는데 어려서부터 영리하여 말을 배우면서부터 문

                자(文字)를  알고  조금 자라자 손으로  경전(經傳)을  베껴  읽었으며  널리  배우면서  재명
                (才名)이  한  고을에  날렸다.  광해군  기유년에  문과(文科)에  뽑혔는데  간신(奸臣)  이이
                첨(李爾瞻)의  정자에다  비난하는  시(詩)를  쓴  일이  있어  이이첨이  밉게  보아  합격자
                발표에서 이름을 빼버렸다. 마침내 은거(隱居)해서 경서를 연구하여 인조(仁祖) 갑자년

                에  정선훈도(旌善訓導)가  되어  인재를  가르치고  풍속을  교화했으며  역적  이괄(李适)의
                난리 때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을 모아  장차  출발하려고 하는데  난리가 평정되자  공이
                그  곡식을  도백(道伯)  윤안국(尹安國)에게  주어  군량에  보태도록하자  그  일이  조정에
                보고되어  특별히  용담현령에  임명했다.  부임하여서는  백성들의  풍속이  어리석은  것을

                안타깝게  여겨  재치전(齋置田)을  운영하면서  스승을  가려  가르치니  문풍(文風)이  아주
                떨치게 되었다.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동지를 규합하여  싸우려 준비하는데 적이 물러
                가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제용감  판관(濟用監  判官)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관학(館學)의  학생들과  함께  율곡(栗谷)이이(李珥)와  우계(牛溪)  두  현인을  문묘(文廟)

                에 배향하기를 상소 해 청했다. 정축년 난리 때 홍진해(洪振海)공과 함께 의병을 일으
                켜  여주(驪州)에  이르러  화의(和議)가  이루어졌다는  말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와  대나
                무  숲속에다  초당(草堂)을  짓고는  거처하면서  세상일을  잊고  지내면서  주자(朱子)의
                편지를 즐겨 읽었다.


                  이보다 앞서서는 그 고장 풍속이 한낮에 제사를 지냈는데 공이 한결같이 가례(家禮)
                를 따라서  새벽에 지내도록 바로 잡아주었다. 갑자년  회갑(回甲)만에 돌아가시니 효종
                (孝宗)  갑오년(一六五四)  九월  九일이다.  고을  서쪽  등봉리(登鳳里)  유좌(酉坐)  언덕에

                장례하였다. 배(配) 여양진씨(驪陽陳氏)는 횡성현감(檳城縣監) 식(湜)의 딸인데 묘는 공
                과 같은 언덕이나 봉분은 다르다. 아들 발(潑)은 첨지중추(僉知中樞)요 딸은 김대기(金
                大器)와 남시준(南是俊) 권이의(權以義)에게 출가했다. 손자 익보(益寶)는 병조참판이요
                다음은  익휘(益徽)이며  손서(孫婿)는  최우주(崔宇柱)이다.  사위  김대기는  三남一녀요

                남시준은 二남一녀요 권이의는 一남一녀이다.

                  공이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는  돌아가셔서는  상제(喪
                祭)를  예법대로  지냈으며  두  아우와  우애하여  일생  동안  화락하게  지내고  일가친척들

                을 두루 보살펴서 길흉사를 공에게 힘입어 잘 마쳤다. 매양 자질(子姪)들에게 엄히 불




              414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409   410   411   412   413   414   415   416   417   418   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