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9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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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휘는  훈(勳)이요  자는  원충(元忠),  신당(新堂)은  호이다.  고려  좌승상  위옹(渭

                       翁)이  공로로 실직군왕(悉直郡王)에 봉해져  자손이 그대로  본관을 삼으니  바로 지금의
                       삼척이다.  十一세를  전하여  중랑장  광유(光裕)가  있었는데  고려가  망할  때  절의를  지
                       켰으니 이분이 五세조이다. 증조는 상장군 중순(仲淳)이요 할아버지는 별시(利侍) 난손
                       (蘭孫)인데  공신(功臣)이요  아버지는  우후(虞侯)  양필(良弼)이니  선무공신(宣武功臣)이

                       며  온양군수(溫陽郡守)  남유재(南有梓)는  외조부이다.  공은  명종(明宗)  경신년(一五六
                       O)에  출생하였는데  천성이  영리하고  일찍  문장과  역사에  통했다.  선조(宣祖)  기묘년
                       (一五七九)에  향시(鄉試)에  응시하여  약관(弱冠)의  나이에  여러  학생의  우두머리가  되
                       어 명성이 자자했다. 경진년에 문청공(文清公) 송강(松江) 정철(鄭轍)이 관동백(關東伯)

                       으로  노동(蘆洞)과  동산(東山)의  두  묘(墓)를  봉심(奉審)할  때  공이  따라가  그림으로
                       그려 조정에 보고하니 특별히 광릉참봉(光陵參奉)을 제수했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의빈
                       부도사(儀賓府都事)로 나아갔다.


                        임진년 五월에 왜적이 대거 침입해 오자 황정욱(黃廷或)공이 왕명을 받들고 왕자(王
                       子)  순화군(順和君)을  모시고  회양(淮陽)에  머물러  있으면서  삼척을  동쪽의  요충지로
                       삼아  부사(府使)  기령(奇苓)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게  해  관문을  지키게  했다.  이
                       때 공이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마음을  다해  도와  큰  힘이  되었다.  문묘(文廟)의  위판

                       (位版)을  받들어다  임시로  손묘산(遜廟山)에  안치했다가  난리가  끝난  후  다시  모셔왔
                       다. 의병을 모집하여 군대평(軍垈坪)에서 싸워  적에게 많은  사상자를  내게  했다.  을미
                       년  七월에  우리나라  사람으로  왜군에게  포로로  잡혀갔다  도망해온  자들이  배를  용장
                       (龍場)에  대니 부사  홍인걸(洪仁傑)이  잘못  왜구로  알고  모조리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

                       다.  조정에서  그  말을  듣고  본도로  하여금  용장  사람들을  조사하여  부사가  체포되어
                       갔다.  공  역시  말이  연루되어  옥에  갇혀  있는데  감사  정철이 상소해  변명해서 풀려났
                       다.  광해군  계축년에  김용(金墉)의  변란이  일어나자  공이  눈물을  흘리면서  강상(綱常)
                       이 끊어진 것을 한탄하고는 곧은 말로 응지상소(應旨上疏: 임금의 명을 받고 상소하는

                       일)를 하자 대각(臺閣)이 탄핵했으나 끝내 불문에 붙였다.

                        구호(龜湖)  가까이에  집을  짓고  세상을  잊고  살았는데  인조(仁祖)  계해년(一六二三)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으로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고 돌아가시어 쇄운(灑雲) 계좌

                       (癸坐) 언덕에 장사하였다. 배(配) 영인(令人) 현풍곽씨(玄風郭氏)는  참봉  방언(邦彥)의
                       딸인데  왼쪽에  부(祔)한  쌍봉이다.  맏아들  기(夔)는  통정대부요  다음  극(兢)은  무과에
                       급제했고 다음은 길(佶)이며 딸은 최극명(崔克明)에게 출가했다. 큰아들은 처음에 아들
                       이  없어서  동생의  아들  천갑(天甲)을  양자로  삼으니  수문장이며  늦게  아들을  낳으니

                       성윤(聖潤)이다.  가운데  아들의  아들  천갑은  양자를  가고  다음  천을(天乙)은  부위(副
                       尉)요 다음은 천병(天丙)이며 세 딸은 함비개(咸備皆) 최곤축(崔坤) 최원각(崔元角)에
                       게 출가하니 최원각은 봉사(奉事)이며 막내아들의 아들은 용강(庸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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