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7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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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세였으며 묘는 북삼면(北三面) 지흥리(智興里) 만숭동(萬崇洞) 경좌(庚坐) 언덕이다.


                        배(配)  단인(端人)  강릉김씨(江陵金氏)는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  언손(彥孫)의  딸로
                       아들  여섯을  낳으니  고(皐)는  장사랑  참봉이요  직(稷)은  통정대부요  계(契)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요  수(垂)는  장사랑인데  계부(季父)  열(烈)에게로  양자  갔으

                       며 이(夷)는 전력부위(展力副尉)요 사원(嗣元)은 자손이 경성(鏡城)에 산다. 손자 이하는
                       번거로워서  다  기록하지  못한다.  아,  부군처럼  고상한  분은  평소  축적한  바가  세상에
                       크게  쓰일 수 있었을 것인데 단지  변방  진(鎭)의  직임만  맡았으니 후손들이 어찌  개탄
                       하지 않겠는가? 전에 세운 비석이 마멸되었기 때문에 형철(炯轍)이 유감으로 여겨 여러

                       종인들과 의논해 돌을 캐다 다시 세워 무궁한 후세까지 전하게 하는 바이다.




                                                        서기一九四六년 병술 十一월  일 十三세손 형철(炯轍) 삼가 지음
                                               삼가 형철의 청으로 그 十三대조 장사랑부군(將仕郎府君)의 묘비명을 짓는다.




                        높다란  저  산기슭에  군자(君子)의  무덤이  있네.  효성과  우애를  근본으로  삼아  백가
                       지  행실이  아름다웠네.  변방의  국경을  위엄으로  지켰네.  공을  이루고  명성  날리고  산

                       골로  물러나셨네.  멀리  전하려는  아름다운  모책에  대대로  빛이  나네.  그  뛰어난  행실
                       사라지지 않고 이 비석에 분명하네.




                          강릉(江陵) 함종호(咸鍾浩)는 명(銘)을 짓고 진주(眞珠) 심지황(沈之潢)은 전자(篆字)와 함께 글씨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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