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0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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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公)은 천성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효성으로 모시고 상(喪)을 당해서 예로써 마쳐
온 고을의 모범이 되었다. 난리를 당해서 왕을 호위하고 강직한 상소를 올려 인륜을
부호하니 이 모든 것은 효심에서 나온 것이다. 어진 임금이 나와서 다스리어 조정이
청명하면 마땅히 조정에 서서 여러 현인들 사이에서 분주히 속에 간직한 포부를 펼
수 있었을 것인데 나아가지 않고 산골에서 유유자적하다 돌아가셨으니 그 넓은 생각
과 운치를 보통 사람이 알 수 있으랴?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현철한 사람의 뛰어난
행적은 한결같이 효에 근본 하였네. 효는 우리 마음속에 있어 명교(名敎)에 도움이 되
네. 산은 높고 물은 맑으니 비석 세워 밝게 보이니 공의 묘비이네.
병술년(一九四六) 늦봄에 통정대부전비서원승(前秘書院丞) 안동(安東) 김영한(金甯漢) 짓고
통정대부전비서감승(前秘書監丞) 우봉(牛峰) 이병찬(李丙瓚)은 글씨를 쓰다.
410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