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7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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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成慶)은  성종(成宗)  때  문과에  급제해  안동판관(安東判官)을  지내면서  치적이  있었

                       는데 벼슬을 벗고 그곳에다 집을 짓고 살면서 영남 사람이 되었으니 공의 五대조이다.
                       고조  휘  계손(繼孫)은  보공장군(保功將軍)이요  증조  휘  한백(漢伯)은  부호군(副護軍)인
                       데 효행으로 정려(旌閭)를 받았으며 할아버지 휘 적필(迪弼)은 훈도(訓導)요 아버지 휘
                       덕붕(德鵬)은  덕을 숨기고 벼슬하지  않았으며  어머니 유인(孺人) 안동김씨(安東金氏)는

                       행실이  순수하였는데  선조(宣祖)  기사년  二월  十二일에  공을  대야리(大野里)  집에서
                       출생하였다.  공은  모습이  준수하고  재주가  총명하여  七세때  백부  상사공(上舍公)에게
                       서  수학하여  천자문을  배웠는데  몇  순(旬)이  되지  않아서  전편을  모조리  암송하기를
                       얼음에  바가지를  굴리듯  하니  상사공이  특별히  사랑하였다.  하루는  김유일재(金惟一

                       齋)와  이율원(李栗園)  두  선생이  상사공을  찾아왔다가  공이  글의  뜻을  이해하고  글씨
                       를 잘  쓰는  것을 보고는 놀라  말하기를「삼척김씨 문중에서  큰  유학자가  나왔다.」라
                       고 하였다. 성동(成童)이 되어서는 열심히 공부하여 보지 않은 경사(經史)와 문집이 없
                       어 문장이 크게 성취되어 명성이 자자했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버이를  모시면서  옥(玉)을  받들고  가득한  물그릇을  받
                       들 듯  조심조심 하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잠시도  모시는 곁을  떠나지  못하고  또  마음
                       을  전적으로  공부만  하는데  쓸  수가  없어서  마침내  벼슬길에  나아갈  생각을  끊고  은

                       거하여 산에서 나무하고 물에서 고기를  잡으면서도  힘든  줄을 알지 못했으며 입에 맞
                       는 음식이 끊어지지 않았다. 기축년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고 신묘년에 어머니 상을 당
                       했는데 전후의 상에 상제(喪制)를 엄히 하여 삼복(喪服)에 피눈물 자국이 얼룩졌다. 초
                       하루와 보름이면 성묘를 가는  외에는 한걸음도 외출을  하지  않았고 매년 제삿날을 당

                       하면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마치 살아 계시는 것처럼 정성껏 모시니 온 고을이 모두
                       효자라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아래에서 천거하는 사람이 없고 위에서 나라에 보고하는
                       사람이  없어서  표창하는  은전이  내려지지  않은  것이  유감이었다.  만년에  임진왜란을
                       당하여  경향(京鄉)이  놀라  양양(襄陽)  현서(峴西)로  피난을  가서  그곳  아름다운  산수

                       (山水)와  넓은  들판을  사랑하여  아주  눌러  살기로  마음먹고  날마다  그곳  점잖은  사람
                       들을 불러 담론하고 시를 읊는 것으로  고상한 취미를  삼았으며  평소에는 집안을  깨끗
                       이  청소하고  단정히  앉아서  책을  보면서  즐겼다.  또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소학
                       (小學)  대학(大學)  등의  책에  마음을  써서  성경(誠敬)을  수신(修身)의  근본으로  삼았으

                       며 때로 시골의 수재(秀才)들이 책을 끼고 와서 배우기를 청하면 문득 재주에 따라 가
                       르치고,  옛날 성현들의 격언(格言)과 주요한  가르침을 뽑아서  자제들을 경계하여 실천
                       하게 하니 공이 평생 행한 덕의 독실함은 대개 이런 유였다.


                        갑술년 三월 五일에 정침(正寢)에서 돌아가시어 도동산(桃洞山) 신좌(辛坐) 언덕에 장
                       례하였는데. 배(配)  유인(孺人)  경주김씨(慶州金氏)와  같은  무덤이다.  아들  셋을  낳으니
                       철준(哲俊)  희준(熙俊)  시준(時俊)이다.  철준의 아들은 간(簡)이요 희준의  아들은 환(桓)
                       이요 시준의 아들은 규(珪)이며 증손과 현손 이하는 많아서 다 기록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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