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9 - 신정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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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늙은 동리에 촌로들에 들어본다. 몸서리쳐지는 지 이따금씩 잊
                 혀 져 가는 아픈 기억 속에 그때 이 전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과거

                 의 형상이 마치 파노라마가 되어 오는데 얼굴에는 그때의 악몽 되
                 어 되새겨져 실핏줄 경련이 일어가며 설명을 하여 준다.
                   철부지 우리들 그렇게 우리들은 그냥 매일을 돌무더기 돌아들어

                 다니곤 했다. 그것도 나이도 어려 젊은 군번 없는 학도병들과 뒤섞
                 인 우리들의 선배 청춘들 진혼이 되어 한곳에 모여져 있는 걸 한 참

                 이 지난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버린 이름 없
                 는 돌무더기는 전쟁이 끝나고 이후 그나마 근동에 주민들에 의해

                 거두어져서 한참의 세월이 지고 난 이후 현재는 제법 동그랗게 쌓
                 아올려져 있어 봄이면 이름 모를 노랑, 빨강색의 꽃들과 유난히도

                 흰 민들레꽃들이 돌무더기 사이 비집고 나와 있고, 장마 비도 피해
                 가는 여름이면 고만 하니 지천에 널려진 잡풀들 사이 비집고 까만
                 색 열매 머금은 까마중 잎 새 고개 들추고 내밀어 있고 가을이 되면

                 돌무더기 한 편에 고개 내밀어 외로이 흰 민들레와 보랏빛 쑥부쟁

                 이는 처연히 고개 숙이고 고단하니 빨간 고추잠자리들 쉼터가 되어
                 준다.
                   겨울이 다가 온다. 눈이 쌓이는 길거리 뒤로하고서 삐죽하니 돌

                 구덩이 사이로 하얀 수증기는 누구인지 누구 것인지도 모를 비통하
                 니 긴 한숨이 되어 새어 나온다. 책가방 내동댕이치고서 펜과 종이

                 를 던지고서 무너지고 짓밟히고 부서져 무너져가는 조국을 지키고
                 자 나라의 부름으로 나이도 속이고서 바람 앞에 암울하니 꺼져가는

                 겨레의 운명 앞에 이 조국을 지키고자 홀연히도 나섰을 우리들의
                 선배들이 있었다. 엄마 눈에 눈물 바가지 훑어내고서 이별이 될지



                                                         회원 마음모음집 수필 |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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