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0 - 신정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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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모르는데 엄마 손 뿌리치고 뒤에서는 아래채 아궁이에 쇠죽을
                 끌이시며 묵묵히 곰방대에 길게 담배 연기만 허공으로 내뿜으시며

                 어여 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당부 또 당부를 하시며 몸조심하고
                 서 부디 살아서 돌아와야 한대이! 눈물로 하직을 하시던 부모님과
                 눈망울 초롱 하니 바라만 보던 어린 동생들과 가족들의 피눈물 뒤

                 로하고서 만류를 하시던 우리들의 형이요 선배였음이다. 뒤돌아볼
                 겨를도 없었음이다. 조국의 부름에 한달음에 전선으로 투입이 되었

                 음이다. 청년도 아니 된 나이 이제 사춘기 지나서 내 키보다 길고
                 무거워서 어깨에 둘러쓴 청동 실탄 꾸러미 탄창으로 어깨에 짓눌리

                 어 고름 피가 되어 누렇게 탈색이 되어버린 빛바랜 러닝 사이로 삐
                 쳐 나온다.

                   “등화관제燈火管制”
                   불 빛 세어 나가면 죽음만이 기다릴 뿐 피곤하니 감기어 까만 눈
                 동자도 가려주고 있다. 허공에 쏟아지는 박격포 소리 귓전을 때리

                 는 총알 소리에 칡 흙 같이 어두워지는 밤이 된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는 지척에서 울어 대는 전선의 밤이
                 된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려 한다. 주머니에 넣어 둔 주먹
                 밥 시큼하니 내음 되어 코끝을 스쳐 간다. 까칠하니 입 안에 소갈증

                 이 되어온다. 숨소리도 두려워 계곡을 흐르는 물 한입 둥그런 머위
                 잎 떼어내어 아침에 준비해 온 보리 주먹밥 꺼내어 한 입 베어 문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되면 두고 온 고향 생각 기리고 내 사랑하는
                 가족들이 불현듯이 떠오르며 잠시나마 상념에 잠겼음이라. 이 지긋
                 지긋한 전쟁이 빨리 지나갔으면 해 본다.

                   그리운 친구들과 교정에서 정든 고향에서 가족들과 오손도손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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