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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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해석이 이상하다고요? 이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워낙 윤리/도덕적
해석에 젖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성경 해석을 들어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 한 마디의 대답으로 모든 비판이 다 잠잠하게 됩니다. ‘성경이
이렇게 해석하고 있는 것을 어쩌겠습니까?’ 이것은 저나 어떤 해괴한 해석을 일삼는
사람의 이상한 해석이 아니라, 성경 스스로의 해석입니다.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습니까?
이 본문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늘 신변잡기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이 본문이 우리에게 경계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보여
주는’ 구속 역사입니다. 성경을 이런 식으로 읽지 않고, 모든 상황을 개인적이고
가정사적인 일로, 심리학적인 일로, 개인의 성공 신화로 읽어 버린다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깨끗이 삭제됩니다. 이것은 성경을 결코 바로 보는
방법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면, 창세기 16장과 21장의 이야기를
아브라함의 가정사로 읽으면 그 교훈이란, ‘가정 불화를 막기 위한 대처 방법’에 대한
것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는 없습니다. 단지 윤리나 도덕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본문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의 해석을 따라 이
본문을 보면, 여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다는 메시지가
나타나게 됩니다.
창세기의 이 본문을 신약 성경 갈라디아서가 어떻게 읽는지를 살피는 것을 통해
우리는, 특별히 구약의 여러 사건들이 오늘날 정황에서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이런 많은 얄팍한 해석들이
하루빨리 그리스도로 옷 입는 날이 오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22 어머니를 선택한 룻(룻 1:1~18)
룻은 착한 며느리의 표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