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3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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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하는 사람이건 아니건 그것은 그 다음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도니야와
그를 좇았던 요압, 아비아달은 ‘정치적 반대편, 즉 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은
‘불신앙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솔로몬을 왕위 계승자로 지명하셨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것에 저항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간적으로 힘을 모아 엎으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서열이 가장 높은 아도니야를 왕위
계승자로 세우는 것은 외부적으로도 위신이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악한 것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마치 ‘열두 정탐꾼 사건’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이미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저 땅을
차지할 수 있다’하였습니다. 하지만 ‘저 땅은 우리를 삼킬 것이다’라고 말한 사람들은
단지 현실을 보는 안목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불신한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도니야를 좇은 사람들에게서 이 열 정탐꾼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협잡과 암투가 난무하는 ‘왕국의 정치
싸움’을 연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성경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신자는 현실의 유혹 가운데에서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붙좇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솔로몬의 숙청 사건은 정적을 말살하는 것이었나
같은 측면에서 열왕기상 2장의 내용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마도 성경의
이 장을 읽는 많은 분들이 이맛살을 찌푸리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솔로몬이 너무나 치졸해 보이는 짓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왕이 되자마자 한
일은 무엇입니까? 방금 전에 아도니야와 결탁하여 자신의 왕위를 위협했던 사람들을
하나씩 죽이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짓입니까?
하지만 이 역시도 앞의 내용과 같은 관점에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정치적 구도에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성경의 평가를 잘 보십시오.
만약 솔로몬의 이러한 처형들이 개인의 악한 의도에 의해 시행된 것이라면 하나님이
이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불쾌히 여기시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 정적들을
죽였을 때 오히려 무엇이라고 평가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