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4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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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46절).
성경은 솔로몬의 이런 행동을 추악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잘못했다는 언급이나 하나님의 불쾌하심도, 이로 인해 솔로몬이 벌을 받았다는
여지도 전혀 남기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일을 통해 나라가 견고해졌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솔로몬의 정적 처단을 무슨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서 바로 앞 글에서 다룬 문제를 다시 상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성전을 지을 자’로 언급하실 때, 다윗과 다른 점이 ‘다윗 시대에는 아직
대적이 멸절되지 못한 때’, 그래서 아직 ‘안식이 임하지 않은 때’로 인식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때는 ‘대적이 다 멸절되었기 때문에 안식이 임한 때’ 즉, 성전을
지을 수 있는 때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솔로몬이 정적을 죽이고 있는 행위는 무엇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왜 솔로몬은 적들을 다 멸했다면 멈추어야만 할 살인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죽임을 당하고 있는 이 자들이 여전히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대적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이스라엘 안에서 없어지기 전에는 이스라엘 내에는 여전히
안식은 없습니다. 다윗이 외부의 적들을 처치했다면, 솔로몬은 성전을 세우고 평강을
가져오는 자가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내부에 있는 적들을 처치해야 합니다.
다윗이 죽으면서 하는 유언을 보고, 다윗을 ‘마음속에 꽁한 것을 갖고 있다가
마지막 죽을 때 복수하라고 유언하는 늙은이’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1~9절).
솔로몬의 숙청을 정치적 정적의 제거로 이해하면, 다윗은 끝까지 자신의 적을
용서하지 않은 속좁은 늙은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쓰고 있는
내용은 그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다윗과 솔로몬의 편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에게 마지막 과업은 이스라엘 나라에 안식을 가져오기 위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하나님께 맞서 하나님의 뜻을 뒤엎으려 한 내부의 적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