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5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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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호하기 위해 나온 주장들이라 생각합니다.
새벽에 기도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라고 되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새벽에 더 강하게
역사하신다’고 해 버리면, 이것은 불교나 도교에서 새벽에 심심산골에 가 정안수를
떠가지고 와서 바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새벽에는 특별한 정기가 흐르는
시간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습니까? 한국 교회의 여러 가지 생활들이
실제로 이런 무속적 정서와 닿아 있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성경은 과연 새벽을 하나님이 더 많이 역사하시는 특별한 시간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점심, 저녁
때보다 새벽에 더 강하게 역사하신다’는 말씀일까요? 우리가 기도를 한다고 했을 때,
다른 때 기도하는 것보다 새벽에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효험(?)이 있는 것일까요?
모든 성경이 다 마찬가지듯이, 어떤 말씀이든 그 말씀의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본문의 문맥과 정황을 살펴야 합니다. 이러한 통찰이 결여되어
있어서는 성경의 어떤 구절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즉,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라는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역시 이 구절이 이 본문 안에서 무슨
뜻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 시편이 가진 역사적
상황과 문맥을 동시에 살펴봄으로써 이 말씀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편 46편의 역사적 상황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시편 46편은
명확하게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기록되었는지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지만, 이 시편이 고라 자손의 시라는 사실과, 이방으로부터 성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구원받은 것을 노래하고 있다는 정황 그리고 시의 전반적
내용상의 역사적 일치, 아침에 하나님이 도우심 등을 근거로 해서 주석가들은 보통
두 가지 정도의 역사적 상황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칼빈과 같은 이들은 이 시가 열왕기하 19장 35절의 사실을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주석에서 “이 시는 하나님이 산헤립의 군대에
무섭고 가혹한 멸망을 내리심으로써 이 도성을 포위한 자들을 치셨을 때(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