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2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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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들어달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각인되어 있어서 이런 견해가 어색할지 몰라도, 우리가 쉽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만 생각해 보아도, 아들이 아버지를 볼 때마다 뭐 해 달라, 뭐 달라, 달라,
달라고만 하는 부자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같은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 자체지, 뭔가를 끈질기게 구해서
받아 버리겠다고 하는 자세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기도에 대해 말할 때
‘응답’이 중추에 오는 것 자체가 문제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전제한 채로 위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첫 번째 문제 ‘그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에 의한 것인가, 우리의 정성에 의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문제가 많이 잘못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때 ‘하늘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결국 기도란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편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지만,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기도를 위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까,
우리의 뜻입니까?
기도를 할 때 뭔가 분량을 채워서 그것으로부터 응답을 끌어내겠다는 생각은
기도의 기초적 가치관을 흔드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사고는 결국 기도의 목적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있습니다. 응답을 받겠다는 것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보겠다는 것이요, 결국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가 반영된다기보다
자기가 중심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분량을 채우면 응답을 받게 된다는 사고방식은 애초에 하나님은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한 것은 없습니다. 내가 뭔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안 하시기로 작정하셨다면 그것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하루에 열 시간씩
기도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의지와 상반되는 것이면 그 기도는 이루어져야
합니까?
이런 기도에 대한 사고방식은 주님의 생각과 전혀 반대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나의 원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