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5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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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와서 보라!” 설교의 함정(요 1:39, 46)
전도 방법론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요 1:39).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요 1:46).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요
4:29).
전도에 대한 여러 가지 세미나 등을 보다 보면 “와서 보라.”는 구절을 가지고
전도 방법론으로 활용하는 것을 꽤 많이 보게 됩니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적용은
‘성경에도 예수님을 소개할 때 일단 한 번 와서 보라고 했다. 우리도 이렇게
전도하면 된다. 일단 오게 하자.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실 거다.’ 즉,
전도를 하는 방법론 중에 ‘사람을 일단 데리고 와서 보게 하는 것’이라는
아이템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이런 식의 전도 방법론은 ‘어떻게든 사람을 데리고 오게만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강화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일말의 부담감을 덜어 준다고 할까요? 교회에 데리고 오는 것까지만 나의
소임이니까 이후의 문제는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책임 경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전도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부담이 적은
상황에서 전도를 할 수 있게 되니 이런 방법론이 환영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은 성경 본문에 기인했기 때문에 성경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앞에서 살펴본 여러 본문들처럼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일까요?
성경에는 이렇게 “와서 보라.”는 말로 초청한 곳이 위의 세 본문들입니다. 첫
번째 본문은 주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 두 번째 본문은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한 말,
세 번째 본문은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마을 사람들에게 한 말입니다.
그러면 쉬운 질문으로 이 문제를 풀어 가도록 합시다. ‘여기서 와서 보라는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메시아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까,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까?’
이 질문을 해 보면, 이 상황이 ‘전도 상황’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