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6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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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통상적으로 전도하는 상황은 하나님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행하는 전도입니다. 이런 전도는 성경에서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가서 전도하는 예들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바울의 전도
여행에서 바울이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전도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전도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아덴에서 우상들을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한 것이나(행 17:22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에베소에서 아데미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전도한 것(19장) 그리고 벨릭스나(24장) 베스도(25장),
아그립바(26장) 앞에서 행한 전도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메시아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행한 전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전도와 성격이 다른, 기존의 언약 백성들을 향한 전도들도 많이
있습니다. 똑같은 바울의 전도만 보더라도, 비시디아 안디옥에 들어가 회당에서
설교한 것(행 13:14 이하, 이 내용은 구약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행한
설교입니다.)이나, 빌립보에서 말씀을 전한 것(16장),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에서 역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한 것(17장) 등은 모두 기존의
언약 백성들, 유대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행한 전도입니다.
전자와 후자는 확연히 성격이 다른 것으로서, 전자의 경우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던 자들에게 ‘유대인의 거부로 인해 복음의 은혜의 문이 열린 것’에 해당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였다’는 것을 가르치려
하거나,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역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이 심판에 이르렀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의 이 본문들은 둘 중 어느 쪽에 해당하는 것이겠습니까?
1장 39절에서 예수님이 “와서 보라.”고 말씀하신 대상은 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말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절대적으로 후자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마찬가지로 46절의 “와서 보라.” 역시,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전도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빌립이 먼저 예수님을 만났고, 이를 통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에 대해 모종의 확신을 가지게 된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말하기 바로 직전의 구절에는
이런 말씀이 증언되어 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