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9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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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십시오!”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린다.”는  주제가  결코  성경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는  토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과연  이

               본문이  그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가?”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린다는  것은  당연히  옳지만,  본문이  가장  귀한  것을  바친다는  개념으로  가르치고
               있느냐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본문은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잃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했을  때에  그는  하나님께  “가장  사랑하는  것을
               드린다.”는  생각으로  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통상적인  해석과  매우  달라  보이지만,  교회가  자주  ‘목적’을





               위하여(이 본문에서의 목적은 성도를 헌신시키려는 목적입니다.) ‘본문’을  왜곡하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보는  눈에  문제가  있어서지,  성경을  잘  살펴보기만  하면  사실  이것은
               발견하기  어려운  독특한  해석은  아닙니다.  성도는  항상  “성경이  앞서  가고  거기에
               자신의  뜻을  맞추어  가야”  합니다.  반대로  자신이  먼저  길이나  목적을  정해  놓고,

               거기다  “성경을  끼워  맞춰  자신의  목적을  충족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본문을  슬쩍  훑어보고는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놀라운  헌신을  도출해  내어

               성도들에게  헌신을  요구합니다.  목적을  위해  성경을  왜곡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성도들에게  무언가  요구를  하거나,  은혜나
               감동을  조장하는  것은  말씀하신  하나님을  비웃는  일이  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이런  일에  민감해야  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이  본문이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과  관계없는  것일까요?  이  본문이
               진짜

                   의도하고  있는  바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먼저  생각해  볼  점은,  창세기  22장  본문에서  나타나는  점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
                       22:5-개역한글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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