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5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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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섬기는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아내와 남편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에 성행하고 있는 ‘아버지 학교’나
‘부부 학교’, ‘가정 세미나’ 등을 보십시오. 전부 그 근원이 어디에 닿아 있습니까?
성경에 닿아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그들은 성경을 배경으로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항상 이런 종류의 가정에 대한 강조는 심리학에 닿아 있거나 교육학에
닿아 있습니다. 말씀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카운슬링이란 것은 항상 세상의 불신 심리학자들이 피상담자의 심리를 읽어 위로를
주려는 방식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출발한 원리에 심리학적 도구를
씌운 것이 아니라, 심리학적 원리 위에 성경을 얹은 것일 뿐입니다. 결국 근본은
성경이 아니라 심리학입니다. 단지 그 위로의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것만 빼면,
그들을 위로하는 모든 내용은 “심리학적 도구”이지 하나님이나 말씀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자면, 성경 없이도, 하나님 없이도, 그들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혼하려는 부부가 배우자에 대해 좀 더 이해하도록 인도하고, 포악한
아버지가 상냥한 아버지가 되도록 인도하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 화해하는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은 심리학입니다. 성경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 도덕률과 성경의
구원역사 안에서 읽는 내용을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양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전반적 풍토에서는 일반적인 도덕률과 성경의 도덕을
구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성경의 내용을 단지 도덕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도
다분합니다. 성경 안에서 구속 사역을 찾지 아니하고 그것을 단지 도덕적으로
선하고 악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도덕적 착함”과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그 사람이 성품이 착하면
“신앙이 더 좋은 것처럼” 여기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학생의 경우는 “공부 잘하고
품행이 방정한 학생”이 신앙이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새벽 기도 운행을 맡고 있는데, 그것을 빠지지 않는 것이 실은 그 사람이 신앙이
없고 단지 ‘성실’하기 때문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신앙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도덕과 성경적 신앙과의 혼동의 예입니다. 이러한 예는
대단히 많습니다.
성경적 진리와 도덕은 일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외양상 비슷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