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0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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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 45:7~8).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20).
일반적인 상황 속에서 요셉이 ‘비전의 사람’이었다는 것은 이제 거의 굳어진
듯합니다. 아무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이 본문을 이렇게
보는 것이 통념화되어 버렸습니다. 이 책의 다른 글 “인본주의에 물든
오병이어”(12번 글)에서 제가 쓴 내용과 함께 비교해 보자면, 오병이어를 바친
소년의 이야기에서 소년이 히어로가 되어 부각되기 시작한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이라면, 요셉이 비전의 사람으로 각인된 것은 오래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성경 해석이 한 방향으로 치우치기 시작하자,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비판의
여지는 없어지고 급속도로 그쪽으로 달려갔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요셉=비전의
사람”이라는 도식에 대해 아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에 대해 왜 반대의 글을 쓰고자 하는지를 간단한 질문을 통해 시작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국어권에서는 ‘꿈’이라는 단어가 곧 ‘장래 희망’ 혹은 ‘비전’이라는 말과
일치합니다. 이는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에서도 ‘dream’이라고 하면 밤에
잘 때 꾸는 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장차 되고 싶은 소망을 말하는 데도
같은 단어가 사용됩니다. 즉, ‘꿈’이라는 단어는 (1) 밤에 잘 때 꾸는 꿈과 (2) 비전
모두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성경 시대의 사람에게 한 번 해 보도록 합시다. 과연 성경
시대에도 ‘꿈꾸는 자’라는 표현이 ‘비전의 사람’이라는 표현이었을까요? 오늘날
사람들에게 ‘꿈꾸는 자’는 ‘비전의 사람’이라 의미할 지 몰라도, 과연 창세기 당시의
사람들 아니면 모세오경을 들었을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꿈꾸는
자’라는 용어는 ‘비전의 사람’을의미했을까요? 아마, 조금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니오’ 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성경은 요셉을 분명히 ‘꿈꾸는 자’로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