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8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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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이로다(시 37:37).
→ 여기의 ‘온전한’이 역시 ‘탐’이다.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잠 29:10).
→ 여기서 ‘온전한’이 ‘탐’이다.
이외에도 성경의 몇 곳에 이 ‘탐’이 사용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 말은 총
13번 사용되었는데 창세기 25장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이 ‘탐’은 ‘완전한’, ‘완벽한’,
‘도덕적으로 완전한’, ‘순결한’, ‘흠 없는’ 등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아 5:2; 6:9;
욥 1:1, 8; 2:3; 8:20; 9:20~22; 시 37:37; 64:5; 잠 29:10. 참조, BDB). 즉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탐’이 ‘조용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곳은 없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이러한 연유로 창세기 25장 27절에서 야곱을 ‘경건한 자’로 번역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살려서 창세기 25장 27절을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야곱은 온전한(혹은 경건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하니.
이것이 바로 성경이 야곱을 평가한 말이었습니다. 성경은 야곱을 절대
비열하거나 유약한 자로 그리지 않습니다. 경건에 있어서 완전한 자! 마치 욥과 같이,
마치 시편 기자가 노래하는 이상적인 인간과 같이! 그것이 바로 성경이 평가하는
야곱의 모습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인용은 좋지 않지만) 유대 랍비 전승에서도
야곱은 “위대한 족장”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야곱을 ‘도덕적 잣대’로 보고 쉽게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야곱은 과오가 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에 열정이 있었으나, 그것을
“인간의 간교한 꾀”로 이루려 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야곱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계시가 있었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그 계시를 이루실 것을 믿고
기다렸어야 하지만, 형에게 장자권을 팥죽으로 사고, 어머니와 연합하여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는 방법으로 장자의 축복을 쟁취하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에 대한
열망은 있었으나 “믿음으로 기다리지 아니하고 조급하게 인간적 꾀를 의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야곱의 그러한 잘못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를 온전한 자,
경건한 자라고 부릅니다. 후에 그가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이 바뀐 것도 자신을
징계하기 위해 찾아오신 하나님께 “울며 매달렸기” 때문입니다(호 12:4, “천사와